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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일목사 | 사건 중심 구약성서 해설 (36) 2018-11-09 0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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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일생 :
(12) 아비멜렉과의 상호불가침(평화) 조약(창21:22-34)


본문이 보도하고 있는 사건, 즉 그랄 왕 아비멜렉이 자기 나라의 군대장관(육군참모총장)인 비골을 수행하고 아브라함을 찾아와 일종의 평화조약을 맺은 사건을 읽을 때,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첫째, 아브라함의 일생에서 처음 경험하게 되는 이 국제적 조약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서 보는 것처럼, 대등한 관계에서 체결된 국가간의 평화적 조약인가, 아니면, 아비멜렉의 통치와 지배 아래 아브라함이 예속되는, 마치 일본 제국과 조선왕조 사이에 체결된 을사보호조약과 비슷한 성격의 주종계약(Sovereignty/Vassal Treaty)인가?


둘째, 성서 저자가 이 사건을 보도하는 동기와 목적에 있어서, 본문은 ‘브엘세바’(Beer-sheba, 일곱/맹세의 우물: 사진)라는 지명(地名)이 생기게 된 연유를 밝히기 위한 일종의 기원론(Etiology)인가, 아니면, 당시의 국제 관계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이 크게 고양되었음을 보도하는, 즉 애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주신바 땅의 소유주가 되리라(창12:7)는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도하는 일종의 신학적/신앙적 변증론(Apologetics)인가?


셋째, 유대교적 전통(창세기 미드라쉬)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이방인과 조약을 맺은 아브라함의 행동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의하여 인간의 힘을 의지하려 했던, 또다른 실수요 신앙적 실책인가, 아니면, 아브라함의 의(義)와 경건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과 보상에 따른 아름다운 삶의 열매요 그의 후손(이스라엘)에게 자부심을 안겨준 영광스런 이벤트였나? 유대교적 전통에 의하면, 이방인과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의 이번 실수로 인하여, 즉 우물의 소유권을 인정받기 위하여 일곱 마리의 암양 새끼를 아비멜렉에게 선물로 바친 행동 때문에, 7의 숫자와 관련된 재난을 초래하게 되는데, 그 자손의 7대(아브라함-이삭-야곱-레위-그핫-아므람-아론/모세-비느하스)가 지난 후에야, 즉 (비느하스 때가 되어서야)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고, 약 400여 년 뒤 엘리 제사장 때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아비멜렉의 후예인 불레셋 군대에게 7개월 동안 탈취를 당하는 수모와 불행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대교 주석가들을 제외한 다수의 성서학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이방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영향력을 인정하게 되어 스스로 찾아와 체결한 상호 불가침 조약이었으며, 이와 같은 해석에 필자도 동의한다. 따라서 이 사건은 당대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아브라함의 신앙과 경건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에 따른 아름다운 열매로 해석되어야 하며, 이 사건을 보도하는 본문도 조상(아브라함)의 위대한 신앙과 행적에 대한 적극적인 변증(Apology)으로 보야야 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아브라함의 행적에 대하여 창세기는 ‘약속과 성취’의 틀 안에서 보도하고 있고, 이 사건도 아브라함의 신앙과 인격에 있어서 상승무드를 보여주는 대목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비록 가나안 땅 안의 작은 우물에 불과하지만 그 땅의 소유주였던 이방 왕이 계약(조약)의 조건으로 (유목민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은) 우물의 소유권을 인정함으로 30여 년 전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이 영광스럽고 의미심장한 사건을 자손들이 영원토록 기억하도록 ‘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브엘세바‘라 명명하게 되는데,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문장은 일종의 언어의 유희(Word Play)이다. ‘세바’는 ‘일곱’이라는 뜻과  ‘맹세’(서약/(Oath)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이 우물의 댓가로 일곱 마리의 암양 새끼를 지불한 값비싼 우물임을 기억하도록 사용한 탁월한 언어의 유희였다.


우리는 이방 왕과의 대등한 입장에, 아니 그보다도 우월한 입장에서,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게 될 정도로 신분 상승을 이룬 아브라함의 영광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아비멜렉과의 조약 체결 직전에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하는 발언(창20:7; 21:22)과 조약 직후에 아비멜렉을 책망하는 아브라함의 어조, 즉 아비멜렉의 목자들이 아브라함의 종들이 판 우물을 탈취한 사건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책망할 때 그에 대한 아비멜렉의 구차한 변명에서도 드러난다: “...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창21:22-23, 25-26)


아브라함의 괄목할만한 신분상승이 시작되는 시점은, 앞의 해설에서 소개한 것처럼, 이신득의(以信得義) 사건(창15:6)이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원조)’이라는 명예를 갖게 되었으며, 이번 사건에서도 아브라함의 아비멜렉에 대한 우위성(Superiority)은 아브라함의 영적(정신적) 우위성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모든 인간은 일생동안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신학과 정신에 따라 행동하게 마련인데,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을 받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참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아브라함의 신학/신앙이 아비멜렉의 세속적 물량주의적 가치관 보다 우위에 있음을 성서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하여 증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계승한 오늘의 기독교인은 생수를 공급하는 우물(브엘세바)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복음)을 믿는 자들로서,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성경의 핵심 사상, 즉 사랑만이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 최고의 참된 길이요, 사랑만이 하나님을 모르는 아비멜렉 같은 이방인은 물론 모든 원수까지 감동시켜 정복하게 된다는 진리(마5:44; 요13:34-35)를 우리가 얼마나 믿고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장영일목사

구약학 Ph. D.
성령사관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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