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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 교수의 조직신학 강좌 21 - 신앙생활의 최대의 적 2018-11-09 16: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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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을 가진 죄인이었던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성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소명’(calling)이라고 부른다. 그 때에 성령님은 우리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는 우리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게 된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회심’(conversion)이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은 중생(regeneration)하고, 우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며,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신생(spiritual new birth)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게 된다. 사실 영적인 갓난 아기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육신적으로 태어난 신생아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여러 가지 병균들과 건강의 대적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처럼, 영적 갓난 아기로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영적인 적들에게 둘러싸인다. 육신적인 신생아들이 병균들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듯이, 영적인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본질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영적인 싸움과 전쟁을 수행해 가면서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경험하게 된다. 당연히 우리는 때로는 패배하기도 하고, 때로는 승리하기도 한다. 승리와 패배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우리는 어느덧 영적으로 성숙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적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마귀이다. 사탄이다. 악한 자이다. 참소하는 자이다. 어둠의 권세를 대표하는 자이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다니며 택한 자라도 미혹하게 하려는 자이다. 마귀는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넘어지게 하려고 하고, 멸망시키려고 모든 수단을 다 활용한다.


둘째, 사망의 권세이다. 순간 순간 우리에게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과 염려를 불러 일으키는 세력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죽음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원리상 예수님과 연합하고 하나가 되어 사망의 권세를 이미 이긴 사람이지만, 실재로 우리들도 자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당한다.


셋째, 세상과 세상의 가치관이다.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는 이 세상은, 마귀의 지배아래 있으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여러 가치관들에는 자기 자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기중심주의, 돈을 최고로 생각하는 황금만능주의, 성과 마약과 도박을 통해 극단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쾌락주의, 명예를 추구하는 인기주의, 권력에 대한 추구 그리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 등이 있다. 또한 세상적인 가치관에 의해서 복음진리를 왜곡하는 여러 종류의 거짓 선생들과 이단자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바로 이 모든 적들은 우리 외부에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외부에 있는 적들의 수가 엄청나다 하더라도, 이 대적자들은 우리 밖에 있다. 우리 내부에 있지 않다.

 

반면 성경이 육체 혹은 육신이라고 부르는 죄의 본성, 죄의 원리는 우리 내부에 잔존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최대의 적이다. 우리의 영은 거듭나고 중생함으로 성령이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게 되었다. 그래서 이 죄의 본성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안에 잔존하면서 호시탐탐 우리를 사로잡아 가려고 시도한다. 바로 잔존하는 이 죄성이 우리 신앙생활의 최대의 적이다.


잔존하는 죄성을 성경은 옛사람이라고도 부르며, 이 죄의 소욕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거스른다. 성령 하나님을 대적한다. 반면에 성령이 주시는 거룩한 소욕은 육체, 즉 죄성을 거스른다. 이 둘은 끊임없는 대결, 싸움, 갈등 가운데 있다. 사도 바울은 이 대결과 싸움과 갈등을 아래와 같이 묘사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갈 5:16-18)

 

문제는 여전히 육체의 소욕, 죄의 소욕이 저항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혹적이라는 데 있고,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데 있다. 우리는 저항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러나 너무나도 쉽게 죄의 소욕에 끌려간다. 끌려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탄식해 본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결국 승리의 관건은 성령과 성령의 소욕을 순간순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입어(엡 5:18) 성령의 지배와 통치를 받아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엡 6:10), 성령의 검인 말씀(엡 6:17)으로 죄와 죄의 소욕을 죽여야 한다.


오늘도 이 피비린내 나는 영적 싸움의 현장에서 성령을 택하고, 성령의 소욕을 택하며, 성령을 따라 행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계속>

 


정성욱 목사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큐리오스 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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