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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교수 | 클라스 스킬더와 공공신학 (3) 2018-11-30 18: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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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동일한 관심들이 공적 신학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크리스천 학자들의 마음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공적 생활에 초점을 맞추기를 선택함으로써 그들은 개인과 국가 사이에는 광활하고 복잡한 영역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친척의 영역을 넘어서면서도 아직 정치적인 것에 삼켜져 버리지 않은 혹은 최소한 그래서는 안 되는 인간적 관계망의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어떻게 크리스천 공동체가 이 더욱 광범위한 공적 의제에 대해서 의견을 효과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중요한 논쟁
 
이러한 공적 신학 논쟁은 의미심장한 불일치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크리스천들이 공적 생활의 이슈들에 의견을 개진할 때에 사용할 수 있는 종류의 언어의 문제에 대해서 치열하게 논쟁이 주고받아진 적이 있습니다. 많은 논쟁을 일으켰던 한 사상가가 바로 듀크대학의 Stanley Hauerwas인데, 그는 공적 문화의 현 상태에 대항하면서 서있는 “과격한 제자도” 공동체들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재세례파의 전통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Hauerwas는, 정의와 평화와 같은 용어들이 다양한 세계관의 관점들에서도 이해 가능한 것이라는 가정 위에서, 크리스천들이 중립적인 공적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에 대해서 특별히 강력하게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Hauerwas가 주장하는 바는, 그 가정은 근본적으로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을 떠나서” 크리스천들로서 우리가 어떻게 이런 용어들에 의미를 제공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합니다. 예수의 사역에 대한 오직 성경적 증언만이 “우리의 신앙에 내용을 제공하고, 우리의 신앙에 여하한 제도적 구체화를 판단하며, 그 자체를 믿을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정치적 구호에 대해서도 의심하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Hauerwas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너무 좁은 신학적 틀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James Gustafson은 Hauerwas와 그에게 동조하는 이들은 “분파주의적 유혹”에 넘어갔다고 비난합니다. 건강한 창조의 신학을 인식하는데 실패한 사상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비판이 Max Stackhouse에 의해서 개진되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공통적인 공적 언어사용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크리스천의 관점으로부터 볼 때, “인간생활은, 그 뿌리에서 있어서, 너무나도 심오한 로고스(logos)를 지니고 있고, 유대인들, 크리스천들, 무슬림들, 그리고 인본주의자들이 서로간에 합리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 하고 또한 소량의 정의에 의해서 지배되는 한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데오스(theos)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어느 정도, 경계선을 넘어서 말할 수 있으며, 다소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가 통하지 않는 말을 할 때 우리를 도전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최덕성 교수

(브니엘 신학교)의 리포르만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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