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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II. 기억에 남은 나의 생애의 편모(片貌)들

박창환목사 | 등록일 2018년11월30일 18시34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할아버지의 신기한 별세

 

할아버지에게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쇠약해지신 것도 아닌데, 하나님은 날을 정하시고, 그더러 죽을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신 것이다. 어떤 식으로 알았는지 몰라도 할아버지는 식구들더러 빨리 아들 딸들을 불러 모으라고 지시하셨다. 사리원에서 사는 경회(敬喜) 고모에게로부터 장연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보가 왔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니 빨리 집으로 오라”는 내용의 전보였다. 주일 설교를 해야 하는 아버지는 그 전보를 받고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당장에 자전거로 단숨에 소꼬지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병상에 누운 것도 아니고 멀쩡하셨다. 그런데 이미 다른 형제자매들이 올만한 사람은 다 와 있었다. 할아버지는 교회 교우들도 올 사람은 오라고 청하였다. 다 모였을 때,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임종 설교를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 때 할아버지가 지정해 주신 본문이 디모데 후서 2장 15절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 명령을 따라 설교를 하고 난 후에 할아버지는 고요히 숨을 거두셨다. 그 어찌 신비한 죽음이 아닌가 말이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야 기차를 타고 소꼬지로 갔다. 장엄한 장례식을 치르고, 정방산 북서 쪽 자락에 있는 할아버지 과수원 안에 묘지를 정하고 매장하였다. 그는 행복한 죽음을 죽으셨다. 공산주의 만행을 보지 않고, 그런대로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가셨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으신 분이라는 것을 나는 느낀다.

 

나는 뒤늦게나마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설교 본문으로 지정해 주신 성구를 되씹게 된다. 그 구절을 나의 변역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너는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사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도록 힘써라.”
이 말씀을 가지고 아버지가 어떤 설교를 하셨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본문은, 그 설교를 하신 다음에 1950년 음력 9월 5일에 해주 감옥에서 순교하시는 때까지 황해노회 파견 교수로 평양신학교에서 성경과 신학을 가르쳐야 할 아버지에게와, 평생 신학교 교수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며 늙어야 할 손자 나 창환에게 대한 예언의 말씀이었다고 생각된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사람 곧 신학교 교수로 헌신하라는 명령이요 예언이었다는 말이다.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아버지의 순교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기독교 목사인 아버지는 운명적으로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공산주의의 마수(魔手)가 교회 탄압의 도수를 높여갔고, 따라서 아버지는 뻔질나게 보안(保安)서에 끌려가곤 했다. 많은 민주 인사들이 공산정치를 피하여 남쪽으로 피신을 했고, 점점 다가오는 무서운 고난을 예상하면서 친지(親知)들은 아버지더러 어서 남쪽으로 내려가라고 권하였다. 특히 평양에 계시는 고모님은 신학교에 강의하러 올라온 남동생인 나의 아버지에게 어서 피신하라고 애원하다시피 일렀다는 것이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는 “내 양을 버리고 어디를 간단 말입니까?”하고 단호히 거절하셨다는 것이다. 1.4 후퇴 때 남하한 고종 사촌들이 평양에서 여러 번 보고 들은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양욱의 기독교연맹 조직으로 인해서, 평양신학교가 연맹신학교가 되자 아버지는 더 이상 출강을 하지 않고 있었다. 각 도에 기독교연맹 지부를 두고 지부장을 임명하는 과정에, 강양욱은 그의 동창인 친구 나의 아버지를 장연까지 찾아와서, 황해도지부장 감투를 씌우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히 거절하였다. 강양욱은 어쩔 수 없이 돌아서야 했고, 신천(信川)에 있는 김익두 목사에게 그 직분을 맡겼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6 .25 새벽, 진격 명령이 떨어졌다. 그날 새벽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러 교회당에 들어서는 내 아버지를, 대기하고 있던 보안서원들이 체포하였고, 마침내 해주 감옥으로 이송했다.


북한 인민군은 승승장구 남한을 몽땅 삼킬 듯 남으로 남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3 개 월 만에 전세가 바뀌면서, 인민군이 퇴각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연합군이 인천으로 상륙하고 서울을 탈환하고, 38선 너머로 북진이 시작되자, 인민군은 모든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을 모두 사살하고 떠나라는 지령을 받았다. 그래서 해주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소위 죄수들도 다 같이 그들의 기총소사로 죽임을 당할 지경에 이르렀다. 해주 감옥의 수감자들이 한 곳에 다 집합되었다. 집행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박창환 목사(전 장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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