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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이집트 침략 12

이집트의 神바람 기도편지

이집트의 이바나바·루디아 선교사 | 등록일 2019년02월08일 11시21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헤롯이 지은 가이사랴 항구

 

바빌론 성채의 함락

(봉쇄시작: 640년 9월, 바빌론 성채 함복: 641년 4월 9일)
거룩한 부활 축제의 날에 그들은 감옥에 있던 이집트 정교회 사람들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그리스도의 원수들)은 이집트 정교회 사람들을 고문하지 않고는 그냥 놓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채찍질하고 손들을 잘랐습니다. 그날에 이 불행한 사람들은 울어서 얼굴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날 그들은 부정한 사람들에 대한 다음 기록처럼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신앙으로 교회를 더럽혔고 배교했으며 아리우스파 사람들과 같은 폭력을 행했는데 그것은 이교도나 야만인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종들을 멸시했으며 우리는 거짓 우상 숭배자들 가운데서도 그와 같은 경우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전제적인 황제에게 복종하여 다시 세례를 받은 배교자들과 이단자들에게 인내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대로 모든 사람에게 보상하는 것과 억울함을 당한 사랑에게 공의를 베푸는 데 있어서는 동일하십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에게 가하는 시험과 형벌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나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는 그들의 믿음이 비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주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배교한 것은 아니지만 신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을 박해합니다. 하나님은 그런것을 절대로 금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원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바빌론 성채와 니끼우가 무슬림 군대에 의해 정복된 것이 동로마 군인들에게 큰 슬픔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아무르가 전쟁을 끝내고 바빌론 성채에 들어갔을 때 그는 크고 작은 많은 배들을 모아서 그가 있던 성채와 가까운 곳에 고정했습니다. 녹색당 의장이었던 메나스(Menas)와 청색당 의장이었던 사무엘의 아들 코스마스(Cosmas)가 무슬림 시대에 바빌론 성채 주위 도시를 포함하고 동로마 군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전사들이 배로 서쪽 강둑으로 왔고 용감하게 밤에 음직였습니다.

 

케브리아스(Kebrias)의 전투
아무르와 무슬림 군대는 말을 타고 아바드자(Abadja 혹은 Abdeya)의 케브리아스 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육로로 진군했습니다. 그러나 도맨티아누스 장군은 무슬림 군대가 접근하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군대와 함대를 버려둔 채 배를 타고 도주하였습니다. 그는 헤라클라우스 통치기간 파놓은 작은 운하에 진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닫혀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돌아서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갔습니다. 병사들은 그들의 지휘관이 도망하는 것을 보았을 때 무기를 던져버리고 그들의 원수들 앞에서 강에 물을 던졌습니다. 무슬림 군대는 강에서 칼로 그들을 학살했으며 지카리아(zecharia) 라고 하는 용맹한 전사 한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도망가지 못했습니다.

 

니끼우 점령(641년 5월 13일)
배들의 선원들은 군대가 도망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 또한 도망가서 자신들의 도시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무슬림 군대가 니끼우에 입성하여 도시를 점령하였지만 저항하는 군인들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거리들과 교회들에서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 모두를 발견하는대로 칼로 죽였습니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자비를 배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도시를 점령한 후 다른 지역으로 행진하여 약탈하였고 발견하는 모든 이들을 칼로 죽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사(Sa) 도시에 갔고 거기에서 에스꾸타우스(EsQutaws) 와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포도원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무슬림 군대는 그들을 붙잡아 칼로 죽였습니다. 그들은 데오도레 장군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멈춥시다. 왜냐하면 무슬림 군대가 겐포트(Genbot) 달 18일 주일에 니끼우 섬을 점령하였을때 그들이 저지른 죄악들을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가이사랴의 함락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Gaesarea) 도시에서도 공포스런 일들이 자행되었습니다. 그 도시와 킬루나스(Kilanas) 도시의 지위를 맏았던 데오도레 장군은 도시를 지키고 무슬림 군대와 싸우기 위해 스테반을 남겨둔 채 자신은 그 도시를 떠나 이집트로 갔습니다. 무슬림 군대와 함께하는 한 유대인이 있었는데 그는 이집트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들(무슬림 군대) 이 엄청난 노력으로 성벽(가이사랴의 성벽)을 무너뜨렸을때 그들은 즉시 그 성의 주인이 되었고 수천명의 주민들과 병사들을 칼로 죽였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전리품을 얻었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데리고 가서 그것들을 자기들끼리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도시를 황폐하게 했습니다. 얼마 후 무슬림 군대는 코르포스(Copros) 나라(혹은 도시)로 나아갔고 스테판과 그의 백성들을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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