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말에 완공된 지하 4층 지상 8층의 초현대식 장로회신학교 영성생활관

박창환 기념 게스트하우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장영일 총장때 영성생활관 신축을 계획하고 모금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임기가 끝나고 그 신축 사업은 김명룡 총장에게 轉嫁되었다. 옛 여자 기숙사 Shattuck Hall을 헐고 그 자리에 남녀 학생 기숙사 겸 각종 시설이 들어 있는 소위 “영성생활관”이라는 집을 짓게 된 것이다. 지하 4층 지상 8층의 초현대식 건물을 지은 것이다. 그 건물이 2013년 8월 말에 완공되었다. 그 건물 4층에 박창환 기념 게스트하우스라는 방이 마련되었다. 김명용 총장의 특임비서로 있는 김종춘 목사와 내가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 교회 이재철 목사를 방문하고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김 목사가 “박창환 교수의 숙소를 마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고 청을 단도직입으로 드렸다. 이 목사님은 쾌히 승낙하고 2억원을 약속하셨다. 그렇게해서 그 새 건물 4층에 나의 숙소가 마련되었다. 집 한칸 없는 나에게 느닷없이 숙소가 마련되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서울에 오는 경우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거처가 생겼으니,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일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고 놀랍지 않은가!


고(古) 이동은 목사 사모 이영숙과의 관계

2016년 1월 19일에 L.A.에서 장신대 동문 미주 은퇴목사 신년 하례식이 있으니 와달라는 청원이 왔다. 오랜만에 동문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아들 선진이와 함께 날아갔다. 여비, 숙박비 등을 동문들이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정한 시간에 도착하여 반갑게 옛 친구들(모두 내 제자들)을 만났고, 내가 한 시간 강연도 하고, 즐겁고 뜻있는 시간을 가졌다. 1박 2일의 모임이었다. 모인 회원들이 동문 회비를 거두어서 비용에 충당했지만 그 비용의 대부분을 고 이동은 동문의 사모 이영숙씨가 냈다는 것이다. 자식도 없는 불쌍한 과부인 그녀가 어떻게 그 거액을 기쁘게 내놓았는가 말이다. 그 일에 얽힌 숨은 스토리가 있다. 그 모임에 참석한 그 누구도 배후에 숨은 비밀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결국 이 사모가 나 박창환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숨은 감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다 말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긴 이야기이다.

이동은 목사는 고려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로 나갔다가 어떤 이유로인가 실명(失明)을 하게 되었고, 목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장신대에 입학했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던 이영숙이 그를 동정해서 결혼을 하였다. 내가 헬라어를 가르치고 있을 때 이동은 학생은 앞을 못보기 때문에 문제였고, 내가 대한성서공회에서 헬라어 점자 성경을 얻어줌으로써 그의 공부가 계속되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이 목사가 일본에서 선교사의 사역을 하는 동안에도 나에게 각별한 예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 목사가 작고하고 그 사모가 홀로 남게 되었다. 자식이 없는 상태로 말이다.

내 아내가 2007년에 죽고 홀아비가 되어 몇 년이 지나자 주위의 친구들과 제자들이 나의 짝을 얻어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나는 전혀 원하지 않는 일인데도 말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소개가 들어왔지만 내 마음은 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종춘 목사와 최지웅 목사가 이영숙 사모 이야기를 거듭하면서 그를 만나보라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비행기 표까지 보내주면서 독촉하는 바람에 L.A.로 날아가 그들이 정해준 호텔에 도착했다. 이영숙 사모가 나의 숙소에 찾아와 장시간 대화를 하며, 자신의 과거사를 소상히 털어놓는 것이었다. 동정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시집살이, 부부관계 등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긴 옛 이야기를 다 듣고, 마음에 결심이 생겼다. 그녀를 동정할 수는 있지만, 그녀의 건강상태로 보아 나의 짝이 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끝으로 동정의 허그를 하고, 아무 말없이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 사모는 다음날 다시 나타나,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렌지 카운티까지 가서 단골 양복점에서 비싼 이태리제 여름 양복 한 벌과 흰색 가죽구두(SAS)를 사주는 것이었다. 나의 여비와 2일 간의 숙박비도 다 그녀의 포켓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나에 대한 애틋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창환 목사(전 장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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