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문제는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게하는 일이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사람으로 살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대속물이 되는 일에 골몰하시는 동시에 자기를 메시아로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치는 일을 소홀히 하시지 않았다. 아무리 예수님이 대속사업을 완수하셨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는다면 그 일은 헛수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민이다. 예수님이 끝까지 사람으로서 인류의 운명을 한 몸에 걸머져야 한다는 자각과 동시에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 것을 드러내어 사람들로 자기를 믿게 해야 할 터인데, 자기를 대망의 메시아라고 공포하는 일은 자기의 구속사업을 좌절시킬지도 모르는 큰 위험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자기를 감추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위험이라는 것은, 첫째, 그 시대의 역사적 형편이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년 동안 외국의 압박 밑에서 신음하며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이었다. 하루바삐 민족의 해방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도탄에서 건져 주기를 학수고대하던 것이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 나타났을 때, 그가 메시아가 아닌가 하여 물밀 듯 그에게로 몰려들었었다. 누구든지 장담하고 나서는 사람만 있으면 그를 받들어 왕으로 모시고 민족해방의 대열에 나설 판이었다. 애국심을 가진 많은 청년들이 요한에게 모여왔었다. 그 중에 베드로도 안드레도 빌립도 나다나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메시아가 바라는 사상은 현세적이요, 국수적이요, 물질적인 것이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자기가 참 메시아이심을 자각하시는 입장에 계시면서도 그 사실을 섣불리 들어내는 것이 어떠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는 백성의 마음을 교화 혹은 개화하고 계몽하여 점차적으로 자기를 깨달아 알고 믿도록 하려고 하셨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발표하시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인식의 눈을 열고 마음의 밭을 계발하는 일에 힘을 쓰셨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 나라 시민의 생활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동경하도록 만드셨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 자신과의 관계를 암암리에 나타내시며 자기는 곧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인 것을 이적과 기사 등을 통하여 나타내셨다. 어쨌든 그는 말로써 자신을 메시아라고 선포하는 것보다 행동을 통하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메시아라고 인식하도록 하고 그렇게 고백하도록까지 하셨다.

예수의 교훈과 그의 이적과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비상하고 심상치 아니하므로, 백성들은 확실히 그가 민족의 해방자(解放者)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물밀 듯 그를 따라다니었다. 만일 예수님의 입으로 “나는 여러분이 대망하는 메시아이요”하고 공적으로 한 마디만 선포했더라면 온 유다 백성이 호응하여 궐기했을 수도 있으리만큼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메시아이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그 말씀을 입밖에 내시지 않으시고, 그의 나라는 그 백성들이 생각하는 따위의 지상의 국가가 아닌 것과 그의 메시아 직은 유다 민족의 지상적 왕국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 만민의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한 고차원적인 의미의 메시아이신 것을 백성들에게 먼저 인식하도록 하려고 노력하셨다. 자기가 메시아라는 것을 공표하는 순간 큰 반란이 일어나고 참된 그리스도의 왕국의 신령한 메시아로서의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가 메시아라는 것을 일반에게 알리는 것은 자기반역이요, 신에 대한 반역행위가 될 수 있었다. <계속>


박창환 목사(전 장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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