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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윤학렬 감독

"문화에 소명을 담아 세상을 변화시킨다!"

김태은기자 | 등록일 2019년07월05일 08시48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유관순과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 수감되었던 9명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삶을 기독교인의 렌즈로 재조명한 영화 ‘1919 유관순’을 만든 윤학렬 감독을 만났다. 세상 영화를 만들던 감독에서 기독교인으로 변화된 후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만나뵈서 반갑습니다. 감독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세상에서 잘 나가는 극작가로 ‘오박사네 사람들’, ‘사랑의 유람선’ 등의 작품 활동을 했고, 한국의 굿을 세계에 알려 무속인을 국가 무형문화재로 만드는 일을 기획했습니다. 저는 무속인들에게 무형문화재를 만드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기에 제 일과는 무속인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로 시작되곤 했습니다. 2008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 내가 사탄, 마귀에게 속아 거짓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철가방 우수씨’, ‘지렁이’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영상 매체로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과 후, 삶의 변화는 무엇인가요?
‘자유함’입니다 나의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나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가치가 바뀌었습니다. 내 목적대로 사는 삶에서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으로 바뀐 것이죠.

 

1919 유관순 영화와 기독교의 연관성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1919 유관순 영화는 100년 전 기독교인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라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0년 전의 목사님들은 청년들을 가르치는 데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들을 바르게 세우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100년 전 그리스도인들은 민족과 시대의 양심이었고, 100년 전 기독교인들에게 만세 운동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운동이었습니다. 유관순 열사 역시 감리교 성도로 이화학당에서 미국인 선교사 엘리스 샤프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출석했던 교회는 손정도 목사가 목회하는 정동교회로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학생들이 주요 성도인 청년들의 교회였습니다. 손정도 목사의 후임으로 부임한 이필주 목사는 3.1 운동 민족대표의 일원으로 그의 사택은 3.1 독립운동 준비의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었죠.


유관순과 8호 감방의 여성들은 다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3.1운동은 기독교 운동이었고, 동시에 남녀평화운동이었습니다. 유교 사회에서 몸종, 기생이 함께 만세를 부를 수 있는 운동이었기 때문이죠.


8호 감방의 20살 신명철은 4살 때 사고로 눈이 멀어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신명철은 “하나님 내가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으나 나도 하나님의 도구가 되고 싶습니다. 나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후 삼일 운동이 일어났고, 신명철은 “나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 두렵지 않다. 두려움 때문에 만세를 외치기 힘든 자는 내 뒤에 숨어라! 내가 외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명입니다. 신체가 불편한 건 동일한데,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난 순간 삶의 태도가 바뀐 것입니다. 8호 감방의 기생 김양아도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성경에 등장하는 기생 라합을 알게 되었고, “라합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했다면 나도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30명의 기생들과 함께 “우리가 비록 가난 때문에 웃음을 파는 직업을 택했으나 우리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며 보건 진료를 받으러 간다는 빌미로 검문을 통과하고 수원 시내에서 만세 운동을 벌였습니다.

 

1919 유관순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사는 곳은 일산인데 하루는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하던 도중 약속이 취소되어 서대문 역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이제는 역사 박물관으로 바뀌어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 촬영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예전 서대문 형무소에 들려 남자 옥사와 여자 옥사를 둘러 보게 되었습니다. 여자 옥사는 외지고 작아 별로 발길이 닫지 않는 곳에 있었는데 그날은 왠지 나의 발길이 그곳으로 인도 되었습니다.


그곳은 8호 감방으로 100년 전 유관순 열사와 함께 옥고를 치른 다른 여성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기록이 모두 적혀 있었습니다. “스무살 신명철은 앞 못보는 시각 장애인, 임신부가 아기를 낳다, 간호사 노순경은 스코필드의 제자였다. 기생 김양아는 수원 지역에 행수 기생이다.”등의 내용들이었는데 신앙의 선조들이 자유를 위해 치른 큰 희생을 알리기 위해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무속인을 인간문화재 만들어 주는 일을 하셨다는데 무슨 뜻인지요?
제 전공이 희곡입니다. 희곡은 문학의 한 갈래이지만, 공연예술인 연극의 대본이기도 한 만큼 연극과 희곡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문학의 장르와 달리, 공연화가 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전공은 민속학입니다. 민속학은 샤머니즘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문화원에서 일하면서 저는 쌀의 여신과 단군신을 연구했습니다. 신들과 자주 교류하며 학습에 의한 무속인이 되었죠. 쌀의 여신과 단군신은 성경에서 말하는 비와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의 역활을 하는 신입니다.

 

희곡과 민속학이 무속인을 인간 문화재로 만드는 일과 무슨 연관이 있나요?
문화원이 하는 업무 중 하나는 그 지역에 감추어진 전설, 민담, 설화를 발굴하는 일입니다. 그것에 관련된 행위, 춤, 가락 등은 샤머니즘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분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분들이 하는 ‘굿’을 세상에 알리는 공연을 기획하였습니다. 무당이 인간문화재가 되려면 세종문화회관과 호암아트홀 두 곳에서 공연해야 합니다. 무당의 굿을 하나의 공연으로 극대화하는 것이죠. 그 일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무속인들 사이에서 윤학렬 작가가 공연을 기획하면 100% 무속인 인간문화재로 승인된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저는 극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에 주재한 외국 대사들을 모두 초청합니다. 굿은 외국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멋지고 신비하게 느껴지죠. 화려한 전통 의상, 음악의 비트, 날카로운 작두를 타는 무속인의 모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이 외에도 무속인들의 후진 양성을 돕기 위해 기록을 잘 정리하고 녹취하여 알리는 일도 했습니다.

 

이번에 박상원 목사님과 함께 미주투어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때 지급된 권총과 외투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디아스포라가 보내준 독립군 자금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세계 각지의 디아스포라는 조국이 큰일을 당할 때마다 물질로, 기도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10대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도 디아스포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100년 전 그리스도인은 민족과 시대의 양심이었고, 100년 전 기독교인들에게 만세 운동은 하나님께 하는 기도 운동이었다는 것을 알리기 원해서입니다.

 

감독님을 통해 세상에 어둠이 빛으로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재조명되기를 기대합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강하는 윤학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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