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3일 개최된 교회사포럼에서 이상규교수는 “그동안 손목사가 목회자로서 보다는 독립운동가로서 더 조명되어 왔던 것이 아쉬웠다. 특히 만주지역의 선교와 목회사역은 다시 돌아볼만하다.”고 발표했다.

한국교회 평신도지도자협회는 지난 8월13일 오후2시 서울 여의도 국회헌정기념관에서 광복절 74주년을 기념하여 일제시대 손정도 목사의 신앙과 삶을 주제로 한국교회사포럼을 개최했다. 이상규 교수(백석대)가 '손정도 목사의 만주선교'를, 임희국 교수(장신대)가 '상해 임시정부 수립 참여'를, 이덕주 교수(전 감신대교수)가 '안창호와 손정도'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첫 발제한 이상규 교수는 “손정도 목사는 목회자이자 선교사였고, 국내외에서 민족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애국지사이자 상해임정시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기독교 민족주의자 였다. 그러나 그동안 손목사가 목회자로서 보다는 독립운동가로서 더 조명되어 왔던 것이 아쉬웠다. 특히 만주지역의 선교와 목회사역은 다시 돌아볼만 하다.”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서 이 교수는 “한학을 공부하던 손목사는 기독교로 개종한 후 평양주재 문요한 선교사를 만나 숭실학교를 들어갔는데 이 때 평양대부흥의 영적 체험을 경험했다. 그후 감리교 목사로서 감리회 연회가 1909년 만주선교를 시작하자 만주선교를 자원하여 하얼빈을 중심으로 북만주지역의 선교사역을 했다. 이후 1924년 만주 길림의 신첩교회 목사로 파송되어 목회를 하면서 독립운동에 관여하다 일제의 고문후유증으로 1931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고 손정도 목사의 삶을 정리했다.

또한 이덕주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손 목사와 도산이 공유했던 가치를 살펴보면, 두 분의 신앙은 보수였지만 사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개혁을 꿈꿨던 진보적 성향도 있었다. 기독교 신앙과 민족운동을 분리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던 독립운동가들”이라면서 “1920년대 중반이후 임시정부 안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기독교 진영 사이에 갈등이 깊어질 때도 두 분은 '죽이는 운동'보다 '살리는 운동'을 지향하며 상부상조를 강조했다. 이들이 지향했던 화합 정신은 기독교와 사회주의를 융합한 기독교사회주의 이념으로 이어졌다. 이는 현재 한반도의 다양한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창조적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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