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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라틴선교원장 윤춘식 교수

"그 사명에 순종하여 남미를 깨우다!"

대담 이윤태 발행인·정리 김태은 기자 | 등록일 2019년08월16일 07시56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의 라틴선교원장으로 남미에서 28년간 선교 사역을 하신 윤춘식 선교사님이 본사를 찾았다. 지난 28년간의 사역과 현재 몸담고 있는 사역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만나뵈서 반갑습니다. 선교사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고신신대원 졸(M.Div), 아신대학대학원(Ph. D), 1990년 고신총회 파송 아르헨티나 원주민선교사로 사역했고, 2017년 5월 선교사 조기은퇴 후 현재 아신대학선교대학원 선교학교수, 아신대학 라틴선교연구원장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1990년부터 교회개척 및 제자훈련 사역에 중점을 두고, 멘도사장로교회와 부애노스아이레스 에벤에셀교회를 개척하여 네우껜 선교교회 마뿌체부족 사역을 했고, 2001부터 2010년까지 5년간 ‘크리스찬타임스’의 스페인어판 신문 문서선교 사역, 2011부터 2017년까지 토바부족 중등학교 사역, 안식년에는 파나마 정글에 사는 엠베라부족 대상으로 성경교육 사역 및 정글교회 개척사역을 했습니다.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목회하던 1988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한인교회를 집회 인도차 방문했다가 원주민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들의 영적인 열악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이 저를 강력하게 세계선교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성경 클라스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일을 계기로 남미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미선교 사역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아르헨티나에서 현지인들 집에 머물며 어학연수를 먼저 시작했고, 8개월 만에 현지로 투입되어 주일학교 선교 사역 및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2년 동안 선교학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그 때 선교학세미나 훈련을 받은 8명의 청년 중 7명이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멘도사 시의 빈민촌에 들어가 멘도사 장로교회를 개척했고, 제 아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에벤네셀장로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두 교회의 거리는 약 12시간이 걸렸고, 우리 부부는 동시에 두 교회를 개척하고 섬겼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첫 개최된 연합 집회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인 시니어선교사님들을 모아 그동안의 경험과 미래전략을 나누는 컴퍼런스를 시작했습니다. 문화, 언어, 사고방식, 역사의 동질감이 동기가 되어 컨퍼런스를 열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집회가 있다면?
1차 과테말라 대회를 진행할 때 하나님은 원주민 사역에 관심이 많으나 한인교회를 섬기시는 목사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전 원주민 사역에 대한 정보는 많으나 사역을 펼칠 재정적인 능력이 되지 않았고, 목사님은 재정은 충분했으나 원주민 사역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둘이 힘을 모아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주최의 초교파 대회를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첫해 과테말라 대회를 앞두고 선교사 열 명만 모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후 대회를 열었는데 80명이 모였습니다. 특히,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건 재정을 후원해주신 교회의 여선교회에서 정성껏 준비해 준 음식이었습니다. 완벽한 테이블 세팅에 차려주신 음식은 선교지에서 제대로 차려진 밥 한번 먹지 못한 우리 선교사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선교하시며 가장 감사했던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믿음과 신뢰로 꾸준히 후원해주시는 후원교회의 감사함 아닐까요? 오랜 세월을 끝까지 믿어주신 후원교회에 감사를 전합니다. 한편, 아쉬운 점은 후원교회와의 인연과 정을 자기들이 해준 양 생색을 내던 선교 본부입니다. 그러나 본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기에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남미에서 선교하시며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저는 가족들과 함께 필리핀 마닐라 해외선교훈련원(바울선교회) 및 싱가포르 ACTI(아시아 타문화교류교육원)의 국제 훈련과정을 1년 이상 거쳤기에 현장적응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교 본부와의 갭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본부 안에 선교 전문인이 없어 선교사들과 본부와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전문인이 들어온 이후에도 책상 앞의 선교행정과 선교현장 선교사들과의 의견 합의에는 항상 틈새가 있었습니다.

 

선교하시며 가장 보람된 일은 어떤 것인가요?
무엇보다 타민족의 영혼 구령에 앞설 수 있었다는 점과 목사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개척과 성전건축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일은 2001~2005년 사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스페인어로 된 선교신문, [엘 띠엠뽀 라띠노] EL TIEMPO LATINO(라틴 크리스천타임스)를 주간으로 발행했던 언론 활동이었습니다. 당시 애틀랜타 ‘크리스찬 타임스’(발행인 이윤태 장로)의 신문 제호와 같은 글씨체를 사용했었습니다.

 

앞으로의 비전이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저는 만 62세에 선교사를 조기 은퇴하고 현재 아세아연합신학대학(ACTS)의 라틴선교원장을 맡아 사역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라틴 선교를 위해 지속적인 연구논문 발표를 펼칠 예정입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파나마 부족민의 영혼 구령을 위해 직접 나서서 전도하고자 합니다.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남미를 향한 복음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갈릴레아교회 주일학교 아동들

파나마 열대정글 엠베라부족과 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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