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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

‘큐티목회’로 가정과 교회를 세우는 우리들교회

대담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장, 백석대 교수)·취재 및 정리 안창희 (본지 한국후원회 부회장, 광교 마루샤브 대표) | 등록일 2019년10월11일 08시2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목사님께서는 여성으로서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택하셨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결혼 후 인생의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음대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피아노 학과 강사로 나름 자리를 잡고 살아가던 저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부모님은 교회 장로님, 권사님으로 독실한 크리스천이셨습니다. 주변사람들은 부자집 의사남편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고 다들 부러워하였습니다. 저도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워낙 어릴 적 가난하고 어렵게 자라온 저는 의사남편과 신실한 믿음의 가정으로 시집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부모님은 결혼 후 문 밖 출입을 못하게 하셨고, 저의 생활을 심하게 간섭하며 그 동안 교회 반주자로 교회를 섬겨왔던 저에게 주일예배만 잠깐 나가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매우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분들이셨습니다. 교회봉사는 50세가 넘으면 하라고 하셨고, 결혼 후 하루하루를 온 집안을 걸레질하고 청소하는 삶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13년 동안 힘든 시집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일하게 의지할 남편도 경제권을 쥐고 돈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시부모님과 동일하게 바깥 출입을 자유롭게 못하게 하고 심지어는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믿음의 남편과 시부모님으로 인해 신앙의 중심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셈이죠. 믿음의 성도들과의 교제도 끊어지고 사회적인 인간관계까지 단절되자 저는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매우 위축되고 번아웃이 되었습니다. 어둠과 절망으로 자살과 이혼을 생각했었고, 주변사람들도 이혼을 해야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시집가기 전에는 전 열등감이 없었습니다. 어릴적부터 교회를 다니고, 교회에서 반주를 10년 동안하고,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집을 가서 열등감이 생기고 인생의 질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시집살이가 도무지 해석이 안 되었습니다. 내 인생이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그런 와중에도 주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서 개인적으로 큐티책을 가지고 주님과 교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의 큐티는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결혼한 지 5년만에 에스겔서를 큐티하면서 말씀이 제게 임하였고 오순절 성령강림이 이루어져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최악의 시간에 주님께서 저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에스겔이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사로잡힌 바 되었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였던 것처럼 저도 최고로 시집을 잘 갔다고 했지만, 가보니 그곳이 바벨론 그발 강가였습니다. 포로처럼 시댁에 사로잡힌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노예가 되어 모든 것들이 묶여서 피아노도 못치고, 외출도 못하고, 신문도 못보고 오직 육체 노동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밑바닥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묶여있는 에스겔과 제가 처지가 비슷하다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말씀이 제게 임하게 되니 내 죄가 보이기 시작하고 인생이 해석이 되니 해결도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나를 위한 하나님의 세팅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한 회개를 하고 난 이후 나의 삶은 똑같은 걸레질을 하고 여전히 밖을 나갈 수 없어도 말씀으로 나의 처한 상황을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평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 면류관으로 생명을 구하지 못하였는데, 주님의 말씀으로 제 안에 있는 모든 더러운 죄를 하나님 앞에서 보고, 회개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에스겔서를 큐티하는 데 ‘무리가 줄로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처럼 제가 동여매였는데 주님께서는 에스겔서 말씀처럼 ‘너는 집밖으로 나가지도 말고 벙어리가 되어 그들을 책망하지도 말고 잘 묶여 있어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큐티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고 입을 다물게 되었습니다. 에스겔도 표증의 인생을 사느라고 험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제 인생과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부어지니 영혼을 구원하고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제 안에 복음이 살아나고 기쁨이 살아나니 제가 만나 하나님을 주변사람들에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집에 계신 시어머니와 집안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에게 날마다 큐티를 통해 만난 예수님을 전하고 나누었습니다. 동네 시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제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는데 전도가 되는 거예요. 제가 문 밖 출입을 안 하고도 전화통화만으로 이혼하겠다는 사람들과 말씀과 묵상한 것을 나누었는데 사람들에게 변화가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이혼을 안하게 되는 기적을 보게 된 것입니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영혼구원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많은 열매를 13년 동안 보았습니다. 그러니 저도 힘든 결혼 생활을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구원되고 이후 남편을 구원해달라고 생명을 걸고 기도하였습니다. 내 생명을 걷어가도 좋으니 남편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편이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 후 제 나이 30대에 남편이 천국으로 갔습니다. 그때에도 주님께서 큐티를 통해 말씀 해주셨습니다. 에스겔의 아내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죽은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울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라” 이 말씀이 남편이 죽음을 맞이한 그날 큐티였습니다. 그날 남편을 데려가는데 전율이 왔었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을 저희집 아파트에서 치르게 되었습니다. 교회 바로 옆집에 살았던 고로 교인들이 위로를 해주시기 위해 많이 오셨습니다. 제가 많이 슬퍼해야 되는데, 오신 분들에게 그날 큐티 말씀인 에스겔 말씀을 전하고 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놀라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했습니다. 시누이도 올케도 심지어는 시어머니께서도 제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사람들이 계속 와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남편이 돌아가시는 그날 저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없으니 제가 피아노를 가르치며 돈을 벌면서 살아야 하는데, 제가 간증을 하면 사람들이 이혼을 안 하겠다고 하고, 자살도 안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또 오는 겁니다. 열매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제가 피아노를 내려놓은게 아니고 더 귀한 것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돈하고 비교가 안 되는 생명을 선택한 겁니다. 이후 사람들이 우리집에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룹별로 학부형모임, 재수생모임, 목장모임, 교구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13년 동안 13개의 소그룹을 했습니다. 매일 매일 모임을 하다보니 부부가 살아나고, 자녀가 살아나며 가정이 회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교회 핵심가치가 가정중수와 말씀묵상입니다. 많고 많은 교회중에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 아니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오기 시작하고 말씀이 준비가 되니 큐티모임을 교회에서 하도록 허락을 해주셔서 교회개척 전까지 4개의 큐티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모임을 시작하니 1천명이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50세가 될 때까지 13년을 평신도로써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교회에서 목숨을 걸고 생명을 걸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도 아닌 것이 사역자자도 아닌 것이 저의 애매한 포지션으로 모임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거예요. 남서울교회 이철 목사님께서 새로 부임을 하시면서 저에게 신학대학에 진학하기를 권면하셨습니다. 교회에서 큐티모임을 하기 위해서는 신학을 해야 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야간에 입학하였습니다. 여자에게 안수를 안주는 백석신학대학원에 간 것은 제가 목회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큐티모임을 하려고 갔습니다. 목회할 생각은 없었어요. 큐티모임을 하는 사람이 성실하지 않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지각, 결석 한번도 안하고 50세가 넘은 아주머니가 졸업 당시 1등을 하였습니다.


신학교 졸업 후 전도사 자리를 알아보았지만 저를 불러주는 교회는 없었습니다. 저는 영혼구원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불신자를 만나는 교육전도사가 되기를 원했었습니다. 이후 홍정길 목사님, 이동원 목사님, 김동호 목사님, 정주채 목사님, 박은조 목사님 등이 이사님들이 되어 주셔서 큐티선교회를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큐티선교회를 만드는데 1천명이 모였습니다. 여러 교파와 교단을 뛰어넘어 큐티선교회를 위해 힘을 실어 주시는 목사님들을 통해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후 목사님들께서는 저에게 교회를 개척하라고 용기를 주시고 말씀을 하셔서 이사님들의 허락을 받고 저희 집에서 개척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큐티모임을 함께 하는 1천명에게 저희 개척교회에 오지 말라고 선포했습니다. 다니시는 교회에 충성하라고 하였습니다. 대신 힘든 불신자가 있으면 저희 교회로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개척을 할 당시 처음에는 과부, 혼자사는 사람, 힘든 사람들, 환란당한 사람들 이렇게 13가정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개척 후 두달 있다가 휘문고등학교 식당을 빌렸다가 이후 체육관을 빌려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10년동안 1만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님도 알게 되었습니다. 부흥회, 새벽기도 없이 오직 주일예배와 수요예배, 큐티를 통해서 1년에 1천명씩 1만명이 모이게 된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오직 큐티를 통해 매일 매일 주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고, 그 말씀을 따라 전도하고자 하는 열정을 품고, 실천을 하니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역사하시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는 설교와 책을 통해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해서 크리스찬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어머니의 얘기를 해주세요.
저는 4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모태신앙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그 당시 다른 어머니들과 비교하면 고학력자이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자식을 낳기만 하면 딸만 낳게 되고 동시에 저희 작은집 작은 어머니는 아들만 낳게 되니 저희 어머니 입장에서 참 기가 막힐 일이었습니다. 아들 낳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랬습니다. 그 당시 여자가 시집을 가 딸만 낳으면 저주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어머니는 온갖 수단을 써서 아들을 낳으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교회목사님께 정성을 다해 섬기며, 교회 새벽기도 제단을 쌓고, 온 교인들을 먹이고 하는 노력을 지성으로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너무 안타까워서 아들을 낳으라고 아들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그 이름이 김양재였습니다. 아들인 줄 알고 기대하며 병원에 가서 아기를 낳았는데 딸인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후 저희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유턴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안보셨습니다. 이상한 기행을 하시면서 어머니가 저희를 안 돌봐 주셨어요. 교회에서 직분도 안 받으시고, 무명헌금하시고, 떡 해 놓고 예배보시고, 몸빼바지 입고 매일 교회 화장실 청소하시고, 남의 집 빨래를 하러 다니는 등, 어머니에 대해 기대할 것이 없었어요. 자녀 입학식, 졸업식에 참석도 안하시고 고학력자인 어머니가 제게 보여주신 모습이 이게 다 인거예요.


지나고 보면 어머니가 저를 돌보지않아 어릴적부터 자립심이 생겨 스스로 공부하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9살인데 정신연령은 30살이 된 거예요. 당시 제가 다니던 장충동 초등학교는 엄마 점수가 매우 심했던 곳이었거든요. 저는 그러한 엄마 점수가 전혀 없었어요. 초등학교 들어갈 때 한글도 못 깨우치고 숫자도 모르고 참 어리버리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장충동 부자동네에서 상대적인 빈곤감과 성적도 형편없고, 준비물도 안 가져가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내가 해야겠다 해서 스스로 공부하고 시험을 봐서 이화여중과 서울대까지 가게 되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집안이 망해서 제가 소녀가정이 되어 피아노를 전공하여 제 힘으로 대학교 다니고 용돈도 벌어 쓰고 집에 생활비까지 내놓는 소녀가장으로 힘들게 살았습니다. 가끔 길거리에서 어머니를 보면 냄새를 풍기며 다니시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를 제가 얼마나 무시했는지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새벽기도를 마치시고 교회에서 나오시면서 뺑소니차에 치어 돌아가셨습니다. 교회 화장실 청소와 눈물 흘리시면서 기도하시는 어머니. 교양 있는 모습은 없었고 육체노동만 하시고 돌아가셨어요.


제가 성인이 되어 시집살이를 통해 땅끝까지 내려가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나는 거예요. 내가 어머니를 얼마나 무시 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저는 제가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예의바르고 참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나 창세기 8장 21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제가 얼마나 어릴 때부터 악하였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어머니를 무시한 저를 깨닫고 주님께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가 새벽기도, 수요예배, 주일예배, 철야, 부흥회 예배를 보면서 필기한 수십권의 대학노트가 있었는데 그것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가책도 없이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던 거예요. 그런데 제가 힘들고 어려움에 있을때, 그 노트가 궁금해지는 거예요. 제가 볼 줄 아는 눈이 없었어요. 이러한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목욕탕 큐티, 때밀이 목사라는 별칭으로 유명하신데 그 이야기와 목사님 목회철학과 방향을 말씀해주세요.
우리들교회의 큐티목회는 교회부흥을 위한 목회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무브먼트(movement)로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말씀묵상’과 ‘가정중수’를 우리들교회 핵심가치로 하고 간증과 적용으로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속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목욕탕 큐티목회 세미나는 2014년부터 매년 5월과 10월에 개최하고 있습니다. 때를 밀기 위해 옷을 벗고 목욕탕에 입장하는 사람들처럼 서로의 마음을 열고 속마음을 나누기에 목욕탕 큐티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들교회 특징이 진솔한 고백입니다. 철저하게 말씀에 입각해서 자신의 죄를 보고 고백하는 것이예요. 때를 벗겨주니 시원하잖아요. “나의 죄가 고난보다 세다”. “나의 고난이 나의 죄보다 약하다”. 이것을 깨달아야 설득이 되고 가정이 회복됩니다. 목욕탕큐티목회 세미나에 참석한 목사님들이 이전과 설교가 달라졌다고 하십니다. 목사님들이 고백적인 설교를 하시고 진정성있게 하시니까 교회도 큰 변화를 보이는 겁니다. 17년 동안 성도 30명정도 출석하는 교회가 목사님의 목욕탕세미나 이후 1년 반만에 120명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 지역의 목사님이 진솔하게 변화가 되시니 그곳 성도들이 큐티를 하러 휘문고등학교까지 오지 않으시고 그 교회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성있는 고백공동체가 되면 성도들은 그 공동체를 찾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국에 자기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초대교회의 원형이 세워지면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들교회가 여러 악조건속에서도 프로그램 없이 10년만에 1만명이 넘는 교회로 모이게 된 것은 한국교회에 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세미나를 통해 우리들교회까지 성도들이 오지 않아도 전국에 자기의 이야기를 오픈할 수 있는 도피성교회가 많이 세워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목욕탕 큐티목회 세미나를 통해 놀라운 은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에도 10월 21~24일까지 우리들교회 판교채플에서 제11회 목욕탕 큐티목회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많은 목회자님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사님은 많은 어려움을 통해 고난에 대한 예수님의 계획을 선포하시고 전하셨는데 고난에 관한 우리 크리스찬들이 배워야 될 것과 목사님께서 암을 이겨낸 그 과정도 말씀해 주세요.
목욕탕 큐티목회 세미나를 점점 더 확대하기 위해 전국으로 다니면서 설교하고 외국 여러나라에 가서도 목회자 세미나를 하며 열심을 내고 있었던 때입니다. 목회를 시작한지 13년이 되었을 2016년도에 제가 암에 걸려습니다. 그날도 사도행전 설교를 하던 중이었는데 주제가 성령충만이었습니다. 주일설교 중 성령충만한 가운데 제가 암이라고 성도들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주의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달이 변하고 피가 변하여서 진노의 날이 되겠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구원을 얻으리라 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는 진노이지만 나는 이제 주의 영화로운 날에 이를 것이고 나는 주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것이라 하고 성령 충만할 때 암을 전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하였습니다. 30년 동안 쉬어 본 적이 없는 저를 하나님께서 쉬게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전보다 더 건강해졌어요. 규칙적 식사를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목회를 1년 정도 쉬었습니다. 담임목사가 부재했음에도 이 기간 동안 교회성도들은 자립신앙들이 되어 일년만에 10% 이상 부흥성장을 하였습니다. 제가 아픈 동안에 교회에 한번도 나오지 않았는데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외부강사도 안 부르고 평신도들이 수요예배를 인도하고요, 목욕탕 세미나 참석하신 목사님들이 돌아가면서 주일설교를 했는데 오히려 부흥을 했습니다.


제가 항암치료를 받는 시기에도 사도행전의 말씀으로 무엇이든지 해석하고 말씀을 기억하고 했습니다. 남편의 죽음도 에스겔 말씀으로 살아났고 항암도 사도행전 말씀으로 살아났습니다. 교인들도 자기들의 삶의 문제와 환경을 오늘 큐티 본문이 무엇인가를 보고 해석하고 있어요.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지요. 기도가 달라지고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말씀이 결론이 되니 교회에 찾아오는 거예요.

 

우리들교회 앞으로의 계획과 방향에 대하여 말씀해주세요.
우리들교회의 목욕탕세미나를 통해서 큐티 목회가 곳곳에 펼쳐졌으면 합니다. 말씀묵상과 가정중수를 통해 전국에 있는 성도가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길 소망합니다. 저희 큐티엠(QTM)의 M은 Movement입니다. 가정의 남자들을 살리고, 남자목회자를 살리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저희 교회 청년부가 2500명인데 이들 가운데 한사람도 이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주도 안 빠지고 가정을 살리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서 말씀의 열매를 보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저를 사사기의 드보라와 같이 쓰신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유일하게 여자 사사인 드보라를 잘 받쳐주고 도와준 바락 장군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드보라 같지만 바락장군이 도와주지 않으면 한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거예요. 사사기 4장에서 군대장관이었던 바락은 전쟁에 드보라 선지자와 함께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되는 네명 가운데 한명이 드보라가 아니라 바락입니다. 드보라를 섬겼다는 이유로 믿음장에 바락이 올라간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통해 놀라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락은 단지 여자 사역자를 세워준 일로 인하여 믿음장에 올랐다는 겁니다. 저에게도 바락이 있습니다. 큐티선교회를 시작할 때 옥한흠 목사님, 홍정길 목사님이 바락입니다. 저를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인정해주시지 않았으면 저는 내 복음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포기하고 피아노 선생으로 갔을겁니다. 그러나 저를 코스타의 큐티 강사로 30대 때 세워주셨습니다. 저의 바락은 때마다 바뀌었고 지금은 우리들교회 부교역자들이 바락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세우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심의 질서를 알고 우리는 이 역할에 순종할 필요가 있어요, 성경의 질서대로 남자목회자와 남자를 세워야 합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장을 세우게 되면 그 가정이 출석하는 교회가 건강해지는 거예요. 저는 이 운동을 하다가 하나님께로 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께서 재미교포 크리스찬들에게 조언과 덕담을 해주세요.
제가 외국에 나가보면 이민자들이 흩어진 나그네로서 삶을 살고 계십니다. 우리가 천국백성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로 사는 거잖아요. 외국에 가보면 참 생활이 어렵고 힘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성도이든 외국에 계시는 성도이든 주님을 만나면 다 똑같습니다. 자기를 다 오픈하고 말씀묵상 운동이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100% 죄인이기 때문에 누군가 처음으로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하면 나도 그런 적이 있다고 공감을 합니다. 누가 고름을 먼저 터트리지 않아서 그렇지 삶을 오픈하고 고백을 시작하면 서로 공감하고 마음을 열고 단단한 은혜의 영적인 공동체가 되어갑니다.


큐티선교회에서 발간하는 큐티인 세트가 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청장년 세대에 걸친 맞춤형 큐티집입니다. 각자의 눈높이에 맞는 간증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놀랍고 솔직한 간증이 담겨져 있어요. 최근에 제가 놀란 것은 청소년들이 리얼하게 왕따 비교 등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고백하면서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입니다. 이런 열매들이 기사와 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큐티인에는 강력한 말씀묵상이 있고 사람들이 말씀으로 살아난 간증이 있습니다. 큐티인은 예수를 믿게 하는 책입니다.


올해 9월부터는 영문판 큐티인이 eBook으로 발간되어 해외 어디서나 영어로도 손쉽게 큐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에 사시는 교포분들도 큐티인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대담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장, 백석대 교수)·취재 및 정리 안창희 (본지 한국후원회 부회장, 광교 마루샤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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