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한인교회의 신윤일 목사가 오는 10월 27일 은퇴예배를 끝으로 목회현장을 떠난다. 은퇴와 함께 새롭게 시작될 두번째 사역의 텀으로 들어갈 신윤일 목사를 만나 실로암교회 20년 사역의 회고를 들어보았다.


실로암교회 사역 20년이 지나 벌써 은퇴하실 때가 되었나 봅니다. 요즘 연세로는 좀 이른감이 듭니다만…
원래 저희 교단(PCA)은 은퇴연령에 제한이 없는데 저희 교회 내규가 65세로 되어 있고, 내규에 따라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요즘 교회들이 원로목사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추세인데 저희 교회에서는 저를 원로목사로 세워주셨어요. 모든 게 감사할 뿐입니다.

먼저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신 배경을 소개해 주세요.
옛날부터 삶에 대한 의문이 많았어요. 생각도 많았구요. 미국와서 직장도 다녀보고, 비지니스도 해보았지만 삶의 의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내와 의논 끝에 늦은 감이 있지만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신학을 하기로 결심했죠. 특별한 어떤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닌데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무엇인가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컸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생활은 청년때부터 하고 있었지요.

부임하실 때 이곳 교회 상황이 매우 안좋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어떻게 어려운 결정을 하시게 되었는지요?
시카고에서 6년을 섬기던 교회(목양교회)에서 좀 한계를 느낄 때였어요. 교회와 나를 위해서 떠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죠. 실로암교회가 분쟁으로 인해 1부와 2부로 나뉘어 따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상황은 몰랐습니다. 저는 2부 예배팀의 초청으로 당시 실로암교회의 임시 담임이셨던 강인덕 목사님께서 권유하셔서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사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싸울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땅도 있었고, 건물도 있어서 그런 분쟁이 야기된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순조롭게 해결되어 4년여에 걸친 분쟁이 마무리 되었죠.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사람이 있다면?
저는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성장시켜야 겠다는 인간적인 욕심은 없었어요. 그저 충실하게 열심히해야 된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그 속에서도 굵직한 사건들은 몇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여름학교인데 그 학교를 운영한 것이 지역사회에 교회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꼭 우리교회 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에 대해 좋은 평가를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거의 무료에 가까운 여름학교를 운영하면서 성도님들과 교사들이 하나가 되어 2백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점심을 제공했는데 그렇게 십여년을 하다보니 좋은 이미지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오는 것과 함께 교회도 성장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선한 일(여름학교)을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교회의 성장도 가져오게 된 것이죠. 또 하나는 본래 있던 성전을 교육관으로 쓰고, 새롭게 본당을 건축하는 과정이 기억에 남습니다. 건축을 시작한 때가 미국 전체를 혼란에 빠트린 서브 프라임 금융문제가 시작된 때라 아주 힘들었습니다. 땅을 다 다져놨는데 사건이 터지니까 일을 진행시켜야 될 지, 중단해야 될 지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는 이럴 때 정말 고민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건축을 중단하면 정지작업 대금 50만불을 날리게 생겼고, 그대로 진행을 하면 계속해서 돈이 더 필요한 상황이고…. 건축위원장도 저를 쳐다보고 있고, 교인들도 모게지를 못내 파산하는 가정들이 생기고 정말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건축총액이 4백만불이었는데 융자가 나온 2백만불을 제외하곤 모두 성도들이 감당을 해야 했기에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성도님들께 눈물나게 감사합니다.
어느 분은 집 모게지를 내야 할 돈을 모았다가 헌금하시고, 어떤 어르신은 건강보험이 없으니까 몸이 아플때 쓰려고 모아둔 돈을 은박지에 싸서 헌금으로 내놓으시고… 눈물어린 헌금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건축하는 과정이 힘도 들었지만 교인들이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도 되었죠. 그러니 목사로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은 것이 아니라 성도님들의 열심으로 교회가 완공된 것이니까요. 건축을 시작해서 마친 시점까지 대략 1년 반 정도가 걸린 것 같습니다.

목회를 회고해보시면서 아쉽거나, 후회되는 일은 없으세요?
교회 일을 하다보면 조직이나 프로그램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조직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이죠. 목사로서, 하나님의 사명자로서 후회가 있다면 사람에게 좀 더 포커스를 맞추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물론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일들, 예수님의 제자화에 좀더 정진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목회자들은 자칫 외형적인 것에 포커스를 둘 때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오히려 교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하고, 교회가 세속화되어 가는 것에 일조하는 것인데 말이죠. 내실을 다지는데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네요.


사실 저의 목회를 되돌아 보면 '감사'밖에는 없어요. 이민교회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저는 참 행복하게 목회한 것 같습니다. 아내와 저에겐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는 쓴뿌리가 없습니다. 참 희한하죠? 사건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온 어려움이 마음에 남아있을 수 있는데 저희는 그런 것이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와 같은 심정이라고 할까요? 이렇게 순조롭게 은퇴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죠.

애틀랜타 지역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들이 꽤 많습니다. 후배 목사님들에게 조언하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목사도 목사이기 전에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이 먼저 되시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먼저 되면 그의 사람 됨됨이를 통해 삶이 나옵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통해 먼저 내공을 키우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사람이 가면을 쓰면 처음 몇 년은 주변 사람들을 속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어항 속에 사는 것이 목회자의 삶인데 진실되지 않으면 남들도 다 알게 됩니다. 먼저 좋은 사람, 진실된 사람이 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은퇴 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그리고 목사님은 어떤 목사님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당분간은 쉬면서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둘러보려고 합니다. 오는 11월 초에도 벧엘믿음교회에서 은퇴 후 첫 집회일정이 잡혀 있구요. 두 딸도 모두 애틀랜타에 있어서 실로암교회에 적을 두고 1부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선교지에 도서관 건립도 돕고, 임시 목회자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그곳을 잠시 섬길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기억하길 목회를 잘했다거나 교회를 부흥시킨 목회자보다는 진실된 목회자, 사랑이 많았던 목회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제 곧 시작되는 목사님의 두번째 사역이 하나님의 도우심아래 순조롭게 진행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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