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S. Gale (기일 奇一) 선교사
James S. Gale, Feb 19, 1863 – Jan 31, 1937 (Entering Korea in 1888)

제임스 게일 선교사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이자 신학박사 및 한국어 학자이다.


게일 선교사는 1863년 2월 19일 캐나다 엘로라(Elora)에서 6남매의 다섯째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에서 캐나다로 이민해 온 농장 경영주였으며 장로교회 장로였다. 그의 어머니는 화란계 미국인이었다.

1886년 매사추세츠 주 마운트 허먼에서 제1회 학생 하계수련회(Summer Conference)가 열렸을 때에 미국과 캐나다 87개 대학에서 251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이 집회의 주도자는 부흥사이며 시카고 YMCA 지도자였던 무디(D. L. Moody)였다. 이때 그들이 외친 구호는 “모두 다 가자, 모두에게로”(All Should Go and go to all)였다. 게일 선교사는 1886년 무디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무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외지 선교를 결심하게 되었다.

1888년 6월 대학을 졸업, 문학 전공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조선(한국) 선교를 결심하고 그의 모교 토론토 대학 기독청년회에서 파송하는 평신도 선교사가 되어, 1888년 10월 18일 캐나다 토론토를 출발하여 12월 15일 부산에 도착했다가 다시 북상, 제물포에 상륙하여 육로로 서울로 오는 길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발진티푸스, 천연두)으로 죽은 시체들이 길거리에 내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서울에 도착하여 12월 23일 주일 오후 2시 언더우드 집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이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이듬해 3월에 그는 황해도 해주를 거쳐 소래교회에 가서 몇 달을 지내면서 한국말을 공부했다.


사진 아래 왼쪽부터 레이놀드(이눌서) 선교사, 언더우드(원두우) 선교사, 게일(기일) 선교사 성경번역 위원회


거기서 그는 평생의 친구요 반려자요 조사가 된 이창직(李昌稙)을 만나, 6월에 그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이창직은 한문에 능통한 충직한 사람으로 게일 선교사의 한국말 선생이 되어 그의 성서 번역사업에 큰 협조자가 되었다. 1891년 2월에는 미국북장로교회 선교사 마포삼열 선교사와 함께 만주에까지 다녀왔다.

그는 전국을 여러 번 순회하면서 조선과 조선어을 익힐 수 있었다. 그의 파송단체인 캐나다 토론토 대학 기독청년회가 재정난으로 게일 선교사의 선교비를 계속 지원할 수 없게 되자,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의사 헤론 선교사와 마포삼열의 주선으로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로 적을 옮겼다. 그때까지 그는 독립된 평신도 청년 선교사로 교파적 배경이나 풍부한 재정적 후원도 없이 여기저기 일거리를 찾아다닌 고독한 선교사였다.


게일 선교사는 헤론 선교사의 미망인인 해티와 1892년 성서 번역에 참여, 마태복음서, 에베소서 등 신약성서 중 일부를 번역했다.

조선(한국) 최초의 <한영 사전>을 간행하였으며 <신·구약 성서>와 <천로역정>을 한국어로 발간하였다. 이 시기에 또한 친구인 헤론 선교사의 미망인인 헤티와 1892년 4월 7일 결혼했다. 헤론 선교사의 병사 후 약 2년이 지나서였다. 해티에게는 그때 두 딸 애니(Sarah Anne, 6세)와 제시(Jessie Elizabeth, 4세)가 있었다.

게일 선교사는 1897년 5월 13일, 인디아나 주 뉴 알바니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북장로교회 목사가 되었다. 게일 선교사는 1900년부터 연못골 교회(현재 연동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시무하기 시작했다.

1900년 5월 연동교회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여, 1901년 정신여학교 경신학교를 통하여 새로운 교육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천로역정'을 한글로 번역하고, 김만중의 '구운몽'을 영어로 1922년 번역하여 출판하는 등 단행본 저서가 43권에 달한다.

또한 성서공회 전임(專任) 번역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성서를 번역했다. 1925년에는 조선(한국) 최초의 사역(私譯)으로 성경(신·구약)전서를 출판하였다.

게일 선교사의 첫 부인 해티가 1908년 결핵으로 사망한 후 1910년 영국 실업가의 딸 루이스와 재혼했다. 부인 루이스의 고향 영국에서 여생을 보내다 1937년 부인과 막내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로 생을 마쳤다. <끝>


박흥배 목사
안디옥 세계선교협의회 회장
왈브릿지 열방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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