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탄 카롤 1세의 동상과 부카레스트 대학

인민 궁전, 의회궁전(Palatul Parlamentului)

차우셰스쿠의 위엄은 그가 남긴 웅장한 의회궁전(Palace of Parliament)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의회궁은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이며, 내부에는 1,100개의 방이 있답니다. 궁전 앞에는 솟아 오르는 분수와 물을 흐르게 수로 가 있습니다. 1500여 명이 사망한 1977년의 대지진 이후 차우셰스쿠는 계획 도시를 건설합니다. 동유럽 주요도시 프라하, 베오그라드, 사라예보 등과 비교하면 손상이 큰 것 같습니다.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 1918-1989)는 이 궁전을 짓기위해 부카레스트의 7000여개 집과 15개 교회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대요. '차우시마'(Ceausima)라고 부르는 12층짜리 인문 궁전(Casa Poporului)은 세계에서 가장 큰 빌딩을 지으려고 1984년 6월 25일 시작합니다. 그러나 미국 팬타곤(Pentagon)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빌딩이됩니다. 그는 이곳에 대통령 집무실, 중앙 위원회, 그외 모든 정부부처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가 권력을 잡을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지배에 맞서는 독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정치노선으로 곧 대중의 지지를 얻습니다. 지위에 오른 그는 비밀경찰조직을 통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을 엄격하게 통제했으며, 어떠한 불만세력이나 반대세력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김일성과 친하여 여러차례 북한을 방문하였으며, 김일성도 루마니아를 3번이나 다녀가며 서로 관계를 견고히 합니다. 그는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떠받드는 평양사람들의 공포정치와 우상숭배를 부러워하여 '김일성 주석궁'보다 더 호화롭고 웅장한 '차우셰스쿠 궁전'을 부카레스트에 짓고, 아들 니쿠에게 권력을 이양할 계획을 세웠다고 가이드가 이야기 합니다.


티미쇼아라 및 헝가리 국경근처의 도시에서 혁명이 가속화되자 차우세스쿠는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시민들을 모아놓고 군중집회를 하다가 이 집회가 오히려 반정부 시위로 돌변하여 차우세스쿠는 도망을 가게되고 혁명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갑니다. 그는 국외로의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혀서 1989년 12월 25일 군사재판을 통하여 처형을 당합니다.


부카레스트는 인구 증가를 염두에 두지 않은 도시계획으로 교통체증이 많다고 합니다. 부카레스트는 현재도 루마니아의 중심 도시로 기능하고 있으며 2000년대 이후 루마니아의 경제가 호전되면서 도시의 외관도 현대화 되어가며 역사적 건축물들도 19세기 프랑스 오스트리아 건축양식으로 복원되고 있답니다.


2009년에 불가리아에 온 후 이웃나라인 루마니아에도 자주 방문하였다는 가이드는 그사이 루마니아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거리들도 엄청 바뀌었다고 합니다. 한국 기업들도 많이 들어왔고 미국 자본으로 활기있게 경기성장을 하고 있답니다. 1989년 혁명 이후 이름을 국회 궁전(의회궁전)으로 바꾸었어도 대부분의 루마니아인들은 인민궁전이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인민궁전은 지상 11층, 지하 5층에 달하는 대형건물로 정면의 길이가 270m, 높이는 84m(276ft), 면적이 365,000m2(3,930,000 sq ft), 대리석으로 꾸민 3천여 개의 크고 작은 방에는 3천5백여 개의 샹들리에가 달려있고, 벽과 천장은 금장으로 장식되는 등 호화롭게 꾸며져 있답니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하여 700명의 건축가와 20,000명의 인부가 동원되었으며, 30억 유로 이상을 들였다고 합니다. 안으로 들어가고픈 호기심이 컸으나 외관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차우세스쿠는 무식한(?) 부인 엘레나의 말을 잘 듣고 많은 건물들을 지었답니다. 그가 이곳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것은 이 거대한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시민혁명을 맞이하였기 때문 이지요. 이 건물을 유지하느냐, 헐어버리느냐의 문제(공산주의 상징, 독재주의자 상징)에서 철거비용이 더 들어 그냥 짓기로 결정, 1997년에야 완공 했답니다.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개선문은 파리의 개선문과 흡사 합니다. 부카레스트 루마니아의 인재들은(약 20만명 정도) 서부 유럽으로 일자리 찿아 나간답니다. 수입이 이곳보다 5배-7배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루마니아 한국 교민은 약 230명으로 삼성, LG, 대우(남은 자들) 주재원들이며 믿기 어럽게도 이 나라의 60%가 삼성 폰을 사용한답니다. 곳곳에 도시마다 정교회들이 우뚝우뚝 자리잡고 있는 루마니아, 정교회의 역사 속에서 루마니아 개신교는 100년 전부터 복음을 전파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현재까지 착실히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계속>


오금옥 교수
롬한인장교회 전도사
캄보디아 인터내셔날 신학교 교수
아르헨티나 및 브라질 교육세미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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