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독재 정권 아래서는 조국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신했다”며 나치 독재 아래에서 살았던 시절을 회고했다.

이 강연에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주의 사상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명한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다.


히틀러 유겐트(소년단)에서 활동했고 제2차 세계대전 전쟁 포로였을 때 기독교로 회심했던 몰트만은 많은 나라에서 새로운 민족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에 “인류에게는 퇴보”라고 지적했다. 그는 스위스 보세이에 있는 세계기독교협의회 에큐메니컬 연구소에서 행한 강연에서 “인간성이 민족성보다 앞선다.”라고 말했다.


93세의 노 신학자는 나치 독일의 “극단적 민족주의” 아래에서 성장한 자신의 경험과 그것이 자신의 가족에게 미친 영향에 관해 솔직히 말했다. “어렸을 때 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나치 독재 아래에서 살았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1933년에 히틀러가 집권했을 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나의 가족과 친척은 반히틀러 사회주의자들과 친히틀러 나치로 나눠졌다.” 소년이었을 때 그는 히틀러 유겐트의 군사주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애국자였기 때문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 후 1937년에 그의 아버지는 나치 당에 가입하지 않으면 교사직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구하기 위해 입당했으며,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군대에 자원 입대했지만 내적으로는 나치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아버지는 '히틀러가 이 전쟁을 이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남자는 자기 조국을 방어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셨다.”라고 몰트만은 말했다. “아버지는 1946년에 프랑스의 포로 수용소에서 귀환하셨다.” 전쟁이 끝나기 전 몰트만은 16세였던 자기 학급의 모든 학생들과 함께 독일군에 징집될 예정이었다. 그는 영국의 전쟁 포로 수용소에서 3년을 보낼 예정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1948년에 그는 독일로 돌아왔다. 그때 그는 아우슈비츠와 나치 친위대가 독일 군인들을 살해한 것에 대해 절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독재 정권 아래서는 조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독일에 대한 나의 사랑은 헌법을 따르는 애국심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민족주의 사상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안에 존재하며 한 민족의 종교가 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 교회는 한 종족의 종교나 서양의 종교, 백인 종교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교회”라며 “그리스도의 교회는 민족적이지 않으며 모든 민족과 인류의 교회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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