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소피아 수도

옛길 옛도시에 차가 늘어나니 교통체증이 많습니다
곳곳이 공사중이어서 Detour하여 들어선 시골 주택가, 나귀수레가 종종 걸음으로 지나갑니다. 아직도 마차가 운행하는 조급하지 아니한 느슨함이 있어 여행중에 편안함을 가집니다. 마차 꽁무니에는 번호판이 달려 있습니다. 이차선 좁은길을 벗어나니 확트인 평야지대가 들어옵니다. 남부 곡창지대랍니다.
소피아 수도를 들어가는데 여기도 Detour 길로 돌아 돌아 가다가 술, 담배, 마약하는 사람들이 많아 들어가기에 꺼리는 남루한 집시 지역을 지나게 됩니다. 소피아 외곽에 5-6만 명의 집시들만 모여 사는 큰 공동체 지역이랍니다.

아름다운 도시 소미아의 어두운 면을 봅니다
불가리아는 냉전시대 소련의 영향권 안에 있던 국가로 공산권 국가이지요. 과거 터키의 지배를 받았었지만 러시아에 의해 해방을 맞습니다. 그래서 불가리아와 러시아의 관계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처럼 매우 밀접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유럽연합(EU)의 27개 회원국 중 알바니아와 함께 가장 못사는 나라라고 합니다.
불가리아는 선교의 요충지라고 하지만 유럽, 유로 공동체로부터 오는 경제적 도전이 크고, 공산권의 잔재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게 박힌 공산주의 세계관은 선교에 걸림돌이라고 합니다.
불가리아는 발칸산맥에 둘러싸인 6개 나라 가운데 루마니아와 그리스, 터키와 인접해 육로 이동이 가능하여 선교가 활발 할 수 있는 요충지라고 합니다. 물질문명의 영향력이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적어도 아직은 정이 있는 나라라고 가이드는 말 합니다. 200만 명 이상의 불가리아인이 유럽 전역으로 넘어가는 것은 이곳에 일자리가 없어서랍니다. 서유럽에서도 대부분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회사생활을 하며 여행 비용을 모아 일년계획의 세계여행을 떠난 젊은 가이드 한별씨는 여행 도중 불가리아에서 선교사로 있는 친지에게 안부차 방문하였는데 일손이 부족한 산교사님의 부탁으로 며칠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도와준 후 나머지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온 후에도 손이 필요한 선교사님 생각에 다시 불가리아로 가는 수년간 선교사 도우미로 생활하다가 참한 불가리아 처녀를 만나 혼인을 하였고 귀여운 아드님도 두어 알콩달콩 살아갑니다.
불가리아어를 할 줄하는 사람이 적어서 한국에서 오시는 귀한 분들 교수, 정치인들 통역도 하고 이곳저곳 필요한 심부름도 나이 어린 막내로 잘 감당하고 있음을 봅니다. 불가리아 지인들을 모시고 건강검진차 한국 의료진을 찾기도 하고 창조적인 사업을 구상중입니다. 그는 불가리아를 사랑 합니다.
우리 일행은 한별씨 가이드와 보스니아 기사님, 미국에 오신지 50년이 되신다는 점잖은 노신사 조 선생님 부부, 박학다식한 김 선생님 부부, 필자 부부 이렇게 8명이 발칸 지역에 대한 설레임을 가지고 들여다 봅니다. 산맥이 능선으로 이어지고 산 중턱(500-700m)에는 농업국가로서 모습이 보여집니다. 한국 대관령 고랭지 같다고 합니다. 흙이 좋아 2~3모작도 가능하답니다.
세모진 작은 지붕밑 창문들, 집집마다 나무, 기와, 시멘트 각색의 독특한 울타리들이 집과 조화를 이루어 흥미롭습니다. 70번 도로의 길이 고르지 않아 남편은 차멀미를 합니다. 추수 마친 검은 땅 Fratest라는 도시를 지납니다. E70 도로 다뉴브(도나우) 강의 다리 건너 불가리아 국경에 이릅니다.
루나미아에서 불가리아로 들어가는 우리 일행은 국경에서 상당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나라가 유럽 관문(EU)으로 세관검사가 까다롭다 하더니 사실이었습니다. 이후로부터는 이웃 나라 국경을 통과할 때는 시간을 조절하고 좀 한적한 길을 택하였습니다.
<계속>
오금옥 교수
롬한인장교회 전도사
캄보디아 인터내셔날 신학교 교수
아르헨티나 및 브라질 교육세미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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