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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세계밀알연합 이재서 총재(총신대학교 총장)

내 인생의 가장 큰 감사, 내가 ‘소경’이 된것

김태은 기자 | 등록일 2020년02월15일 12시5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사단법인 세계밀알을 통해 장애인을 섬기고 지난 해에는 총신대학교 7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재서 총재를 만나 그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천적인 장애가 아닌 열다섯 살 때 실명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때 심정을 말씀해주세요.
예민한 사춘기에 겪은 일이라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이제 내 인생은 끝이구나”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서울맹학교를 다니며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 외로움을 달래어 보았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한 소망보다는 절망감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언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셨죠?
교회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아 좋은 마음으로 교회에 출석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본질적인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집회의 주제가 ‘젊은이를 위하여’로 기억합니다. 그날은 실명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내가 창조주를 인정하고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인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구세주로 영접하자 교회를 다닐 때 별생각 없이 들은 성경과 설교 말씀이 생각나며 내 안에서 살아 율동하게 되었고,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그날 말씀이 20대 초반인 나에게 특별히 은혜를 끼치는 말씀은 아니었으나 성령의 감화 감동이 있었습니다. 똑똑하고 논리적이라고 자부했던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말씀을 따지고,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라는 메시지가 저를 깨웠습니다.

애틀랜타를 비롯하여 미주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밀알선교단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애틀랜타 밀알은 2000년도 제가 직접 애틀랜타를 방문하여 세우게 되었습니다. 당시 시카고에서 사역하고 계시던 최재휴 목사님이 이곳으로 오셔서 애틀랜타 밀알을 맡아 지금까지 사역하고 계십니다. 많은 분들이 장애인 사역 기관은 “세상에 밀려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사역자들이 맡는 사역”이라고 생각하나 당시 20대 중. 후반에 장애인 사역에 사명을 가지고, 헌신한 분들이 지금까지 사역하고 계십니다.
20대 젊은 나이부터 20년을 넘게 꾸준히 장애인 사역에 헌신하신 노고가 매우 귀하고, 존경할 만한 일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장애인 사역하는 분들을 차별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부족하니 저런 사역을 하겠지”라는 세상 편견에도 묵묵히 감당해주시는 각 지역 밀알 사역자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혼자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학사, 석사 졸업 후 각 지역에 밀알 지부를 세우셨는데 일반인들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어떻게 거뜬히 해내셨죠?
“이 일을 내가 해내지 않으면 죽을 거 같다.”라는 믿음과 열정이 강했습니다.
한국에서 시각 장애인은 정상적인 코스를 거쳐 유학을 갈 수 없기에 84년도 혼자 5개월 랭귀지 코스를 신청하고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한국 밀알이 잘 성장하고 있는 시기에 유학을 떠난다고 하니 주변 분들의 우려와 걱정이 많았습니다. “타국땅에서 정상적인 사람도 혼자 적응하기 힘들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도 버티기 힘든데 어떻게 버티려고 하느냐”는 만류에도 안 가면 죽을 거 같다는 절실함과 열정으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필라델피아칼리지오브 바이블 신학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생존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2~3년 뒤 아내가 합류하였고, 저를 도와 대학원까지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어디를 가든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장애인 사역에 필요성을 알렸고, 100명 중 10명은 제 말을 새겨듣고, 밀알 사역에 동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는 곳마다 미리 사람들을 예비하셨습니다.
필라델피아를 시작으로 뉴욕, 워싱턴, 뉴저지, 시카고, LA 다섯 곳에 밀알 선교단을 설립하였습니다. 그중 LA와 워싱턴 지역은 우연히 청년부 수양회에 참석 했다가 밀알 사역을 소개하게 되었고, 마음에 감동을 받은 분들이 미주 각 지역에 밀알 지부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뉴욕, 워싱턴, 필라델피아, 뉴저지, 시카고, LA의 밀알을 연합시켜 연방 정부에 비영리단체로 등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총신대사회복지학과 교수로 25년간 사역하셨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직을 맡아 일하며 “나는 평생 장애인 사역에 부름을 받았는데 교수가 과연 나에게 맞는 부르심일까?”라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신학 대학에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키우는 것 역시 밀알 사역과 다르지 않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교수로 일하는 25년간 45회에 거쳐 해외 지부에 밀알을 방문했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밀알 사역을 알리고, 센터를 세우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제가 모임이나 집회에서 밀알 사역을 알릴 때마다 하나님은 밀알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미리 예배해 두시고, 만나게 하셨습니다. 세계 곳곳의 밀알 지부는 젊은이들과 시작한 사역이었고,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감사가 있다면?
가장 큰 감사는 제 눈이 실명된 것입니다. 실명 때문에 받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실명 때문에 지금의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세계 밀알총재, 신학 대학교수, 신학대 총장 등의 호칭은 장애가 없는 일반인과 비교해도 잘 살아온 인생 아닌가요? 그러나 이 호칭은 장애가 없이 평범하게 살았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집은 가난해서 초등학교, 중학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 중에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실명이 되었기에 시각장애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유학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장애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나 실명은 나에게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는 곳곳에 수없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고, 밀알에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에 가장 큰 감사입니다.
밀알 사역이 100%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재정적, 도덕적인 문제 없이 지금까지 정직하고 바르게 하나님을 믿는 사랑 안에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큰 감사는 건강입니다. 남보다 건강한 신체를 주신 것이 저에게는 큰 감사입니다.

지난해 총신대 총장으로 취임하셨죠?
제가 총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총신대학의 상황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시려고 학교 상황을 어렵게 만드셨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학교의 상황이 좋았고, 기존 방식인 운영 이사회를 통해 총장을 선출했다면 전 총장이 될 수 없었을 거예요. 공정·투명·소통을 강조하는 대학경영 방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총신대학교로 다시 세워나가겠습니다.
 
 밀알창립 20주년 기념예배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재서 총재
 왼쪽)애틀랜타밀알선교단 최재휴 목사, 오른쪽) 이재서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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