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예배 설교(2020. 6. 21) ❋ - 김요셉 원천침례교회(수원) 목사 –
"내 말을 들으라" (마태복음 13장 3-9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녀 믿음 생활이 오래된 분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수십 번도 더 들었을 것이다.
-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무엇일까? (간단한 질의응답) 몇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 비유의 교훈은 우리의 마음밭을 옥토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예수님은 그런 뜻으로 비유하신 것일까?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비유에 대한 착각이 좀 있는 것 같다.
-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바로 뒤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저 사람들에게는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10절) 하고 비유를 드는 이유를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제자들이 묻자 예수께서 "너희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알 수 있는 특권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받지 못하였다"(11절)고 대답하신다. 그러고 난 뒤 예수님이 하시는 대답이 의외다.
- 예수님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라"(13절) 하시며,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15절)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해 비유를 든 이유를 말씀하신다.
-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비유를 그저 설교의 예화로 알고 있다. 즉, 중요한 영적 진리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 쉬운 이야기로 풀어 주시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 한마디로 비유는 어려운 진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야만 복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데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여 복 받은 존재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분별할 수 있는 미스터리(Mystery; 신비, 헬라어 Musterian)로 주시는 것이다.
- 곧, 드러내기 위한 예화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암호처럼 감추시기 위한 도구가 비유이다.
- 그래서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비유로 말씀해 주신다.
- 비유(Parable)는 헬라어 'Parabole(파라볼레)'에서 나왔다. Parabole는 'para'와 'bole'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para는 '옆에서 동행하면서(along side)'라는 의미를, 또 bole는 '던지다(throw)'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동행하시면서 그들의 인본주의적인 죄성으로 굳게 닫힌 마음의 아성에 대한 경계심이 허술할 때 폭탄처럼 은근슬쩍 비유를 던져넣어 주셔서, 그들이 갖고 있는 인본적이고 죄성적인 아성을 폭파하는 용도로 비유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주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잘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삶에 기대치 않은 하나님 나라(하나님 왕국, 하나님 방식) 곧 천국의 비밀(11절)을 받아서 그대로 살아가기로 이미 마음에 결심한 제자들이 그 비밀을 잘 깨닫게 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신 것이다.
- 결국 우리가 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그저 우리 마음이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 밭이 아니라 옥토(좋은 땅)를 만들자는 정도의 도덕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면, 진짜 예수님의 비유 의도를 완전히 놓치는 것이다. 암호 해독이 안 되어 그 의미를 잘못 부여하는 것이다.
- 이 비유는 우리의 마음 상태 네 가지를 설명하시려는 의도가 아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It's not about us). 하나님 곧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분은 어떻게 일하시는가(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대해 이해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 그런데 우리는 자꾸 우리 자신에게 비유의 초점을 맞춘다. 오늘 우리가 영적으로 겸손해지길 소망한다.
- 밭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이 비유의 주인공은 무엇일까? 비유에 등장하는 중요한 캐릭터들은 누구일까? 첫 번째는 씨 뿌리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씨앗이다. 오늘 이 두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1. 씨앗의 미스터리
- 앞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드신 예수님이 몇 구절 뒤에서 제자들에게 해석해 주신다(18-23절).
- 예수님은 씨가 천국 말씀이라고 정의를 내리신다(19절). 여기서 천국 말씀은 무엇을, 아니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저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씨앗이 말씀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말씀 곧 하나님의 천국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한다. 씨앗은 예수님의 말씀이긴 하지만, 좀 더 나아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분이 씨앗이다.
- 하나님의 말씀, 천국 말씀은 기록된 말씀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 본질적으로 우리 개신교에서 복음주의적인 신앙 노선에서 믿고 있는 말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살아 계신 말씀이시다.
- 그런데 말씀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그 초점이 내가 아니라 그분이라고 생각하면 '말씀이신 예수님이 씨앗'이라는 사실을 용납하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니(Genie) 같은 예수님을 원한다. 그러나 작고 보이지 않으며 한참 기다려야 하는 씨앗을 우리는 정말 메시아 예수님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씨의 첫 번째 특징은 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해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씨는 땅에 들어가면서 전혀 느낌을 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제대로 수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씨의 두 번째 특징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라지면 언제 올라올지 정말 예측 불허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씨앗처럼 예측하지 못하고 작고 힘이 없고 사라지는 것을 천국의 파워풀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은 무엇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우리가 하나님이었다면 천군 천사를 동원해서 마귀를 다 제압하고 일방적으로 밀고 들어와 강제로 점령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Power'에 대한 이해가 그렇다. 일을 처리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하늘나라의 비밀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면서 자신을 씨앗이라고 말씀한 깊숙한 이유가 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드시고 나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왜 자꾸 제자들한테 천국은 씨와 같다고 하시며, 자신을 씨라고 하셨을까? 제자들은 나중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선명하게 기록하고 있다(요 12:23-25). 이제 십자가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 예수님이 "내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요 12:23)고 하시자, 제자들은 '이제 드디어 메시아로 등극하셔서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는가 보다. 이제 우리가 메시아의 오른쪽, 왼쪽에 앉을 수 있겠지.' 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곧바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그 밀 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영원히 보존할 것이다."(요 12:24-25)고 말씀하신다.
- "한 알의 밀"은 누구를 상징하는 것일까? 예수님 자신이다.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그분에게서 그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제자들밖에 없었다. 비록 나중이지만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해 체험했을 때 한 알의 밀이 되어서 죽어가는 모습이 뭔지 알게 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천국은 씨와 같으며 자신이 씨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 얼마 후 십자가를 지실 때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성령님과 성경으로 깨어지지 않고서 이런 메시아, 이런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예수님을 전하는 우리에게 씨앗의 신비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을 갖게 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씨 뿌리는 자와 밭의 미스터리
- 씨 뿌리는 자는 누구일까? 만일 예수님이 씨앗이라면, 이 씨 뿌리는 자는 누구일까?
- 마태복음 9장 38절에서 예수님은 "추수하는 주인"이라 하시고,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신다. 씨 뿌리는 자는 하나님이신 것은 어느 정도 교회에 다닌 사람이면 금방 알 수 있다.
- 씨가 천국 말씀이신 예수님이라면, 그 씨를 뿌리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시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도 씨를 뿌리시고, 우리도 복음을 뿌린다면 씨를 뿌리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씨 뿌리는 농부는 하나님 아버지시다. 그런데 저도 씨를 뿌려 보았지만 씨를 잘 뿌리고 싶은 마음이 농부의 마음이다.
-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씨 뿌리는 자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꾸 옥토에다 초점을 맞추었다.
- 그동안 우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면서, 길가와 돌밭, 가시떨기 밭과 옥토로 나뉘는 것으로 마치 우리 가운데 네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어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비유를 이해했다. 우리가 마음밭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밭은 자신의 상황을 자신이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옥토 같은 마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가? 오히려 우리가 예수님 그리고 천국 말씀을 접할 때 위와 같은 네 가지 마음을 다 각각 경험하지 않았는가? 어떤 밭이 자기 스스로 좋은 땅이 되도록 만들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농부가 만들어 주신다.
- 우리 같으면 옥토에만 씨를 뿌렸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길가에도 뿌리시고 돌밭에도 뿌리시며, 가시덤불 속에도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복음의 씨를 계속 뿌리시는 분이다.
- 오늘 본문의 교훈은 우리가 옥토가 되자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은 어떤 때는 길바닥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돌밭이기도 하며, 또는 어떤 때는 가시덤불이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가다가 옥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지금 내 마음이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같아도 예수님을 주신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심한 근심으로 가시덤불 같아도, 직장과 돈, 건강과 가족 때문에 걱정이 있어도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을 뿌려 주신다. 하나님은 그런 아버지시다.
- 어떤 영혼이든 하나님께서 제외하시는 영혼은 없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버선발로 뛰쳐나와 우리를 맞아 주실까? 하나님은 길바닥에 돌밭에 가시덤불 속에 씨앗을 뿌리시며 낭비를 모르시는 분일까? 하나님은 그렇게 상식적이지도 못하고 효율적이지 못하시며, 비합리적이고 자존심 다 버리는 분이실까?
-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누구든지 오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마음 상태가 세상의 재물로 가득 찼어도 시련을 당할 때 배반하는 사람에게도 마귀에게 꾐에 빠질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구별 없이 당신의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 옥토는 무엇인가? 옥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갈아 없는 것도 농부가 한다. 우리 삶 속에서 씨앗이신 예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는 내 노력과 내 의지 그리고 내 선은 핵심이 아니다. 씨앗이 자라는 것이지 옥토가 자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부수고 내려놓고 그 안에 썩은 것들이 거름이 될 수 있도록 씨앗으로 씨앗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순종(Yielding)하는 것이다.
- 하나님이 고수와 오레가노 화분을 가꾸게 하시며 저한테 중요한 교훈 하나를 더 주셨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때로는 길바닥, 때로는 돌밭, 때로는 가시덤불, 때로는 옥토 같은 마음을 뿌려 주신다. 그런데 우리가 그곳에서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군락을 형성하지 못하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지만, 함께 군락을 형성하면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또 다음 세대도 군락 안에서 잘 자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우리한테 골고루 씨를 뿌려 주신다. 그런데 옥토에 떨어질 때마다 우리가 해야 될 것이 있다.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변화를 초래해 주실 때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왕국을 우리에게 건설할 때마다 우리가 제자가 되어서 다른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과 함께 몸부림치면서 같이 가야 한다. 사탄은 그걸 알아서 그런지 코로나 때 교회를 자꾸 떼어놓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 원천교회는 이번 주말부터 시작된 제자 훈련 프로그램 속에서 군락이 형성되고 교회 회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자라는 군락을 이루고 제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우리 모두 같이 군락이 되자.
(요약/정리: 안재환 원천침례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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