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예배 설교(2020. 7. 12) - 김요셉 원천침례교회(수원) 목사 -
"진정한 믿음"(마태복음 15장 1-20절)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 예수님과 제자들을 향한 오해와 비방은 많이 있었다. 그동안에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 예수님이 그런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으셨지만 웬만하면 응대나 대항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이 싸움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것을 아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 오늘 본문처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찾아와 비방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응대하신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지만 유독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직설적으로 응대하신다. 심지어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심기가 불편할 정도로 응대하신다. 그만큼 예수님이 심각한 문제 의식을 느끼셨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무엇이 예수님에게 그렇게 못마땅하신 것일까?
- 오늘 예수님은 억울하고 왜곡되게 자신을 향해 다른 생각을 갖고 딴죽 걸며 시비 거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정곡을 찌르며 그들이 대답하기 힘든 진실을 말씀하신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작 제자들 마음속에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세상 가치에 흔들리거나 휩쓸리지 않도록 제자들을 위해 핵심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마음은 제자들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세상 가치에 흔들리거나 휩쓸리지 않는 제자들이 되도록 하려고 그들을 위해 주신 말씀의 핵심은 무엇일까? 오늘 본문을 통해 대략 세 가지로 그 핵심 키워드(Key Word)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우선'이고, 두 번째는 '위선'이며, 세 번째는 '시선'이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제자들에게 경고적인 성격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1. '우선' 순위가 뒤틀린 율법주의적 영성
- 첫 번째는 '우선' 순위가 뒤틀린 율법주의적 영성으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 우선 순위가 뒤틀리면 율법주의적인 영성으로 전락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어 차선을 최선으로 만들려고 하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제자들이 닮지 않도록 주의를 주시는 것이다.

- 종교 지도자들이 떡 먹을 때 왜 손을 씻지 않느냐고 예수님께 딴죽 거는 장로들의 전통인 손 씻기 문제가 예수님 보시기에 오히려 제자들이 거기에 주눅 들고 그런 가치관에 휩쓸리는 위험이 될 수 있어서 직설적으로 응대하신 것이다(2-3절).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죽지 않기 위해 바둥거리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목숨을 보존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마 22:37).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목숨을 부지하는 데 있지 않으며, 우리는 목숨을 다하는 것이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소망을 갖고 있기에 목숨을 다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최대한 안전해야 하며 지혜롭게 생활해야 한다. 그렇지만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우리의 차선이 되거나 세 번째 가치는 될 수 있어도 첫 번째 곧 최선의 가치는 될 수 없다.

-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님한테 딴죽 거는 것에 주눅 들어 자칫 잘못하면 제자들이 그 가치에 혼동이 되고 휩쓸려서 가랑비 옷 젖듯이 젖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실은 제자들은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이 기분 나빠 하는 것을 보고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 '사람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앞선 우선 순위로 만드는 가랑비 옷 젖는 습관이 지금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 휩쓸리면 안 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그 말씀을 하신 것이다.

- 오늘 본문에서 문제로 떠오른 장로들의 전통적 손 씻기는 위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거룩의 상징으로 진행되어 온 종교적인 행위였다.

- 장로들의 전통적 손 씻기는 거룩함을 상징하는 유대교의 종교적 관습이었다. 이런 유대교 장로들의 전통은 모세 오경에 나오는 부정한 것을 다루는 본문에 대해 랍비들이 해석을 내리고 적용한 부분을 강조하는 것들로 탈무드(Talmud)에 기록되어 있다.

-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기준)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해석을 한 것이다. 어떨 때는 이렇게 해라, 또 어떨 때는 저렇게 해라 하여 서로 충돌이 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손 씻는 것에 대해서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모두 동의하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 성경을 해석하고 만들어 놓은 제도를 성경의 원리, 성경의 뜻, 하나님의 마음보다 그것만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니까 거룩하고 구별되게 하려고 해석하여 실생활에 적용하려고 곧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을 잘 따르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 놓은 것을 그 근원이 되는 말씀보다도 더 앞선 순위로 곧 차선을 최선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씻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정작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위해 주신 하나님 말씀의 의도와 의미는 상실한 채 의식만 강조한 것이다.

- 한국 교회에도 문화적으로 형성된 '사람의 전통'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강대상에 올라갈 때 신발을 벗어야 하는 것, 주초(술 담배) 문제가 영적 성숙의 기준이 되는 것, 이제는 거의 없어졌지만 기타나 드럼 치면 거룩하지 못한 것, 성수주일(주일에 가게나 음식점도 가지 못함) 하는 것, 기도하지 않고 식사하면 큰 잘못이라고 간주하는 것 등이 있다.

- 이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전통이다. 대부분의 전통은 좋은 의도로 심지어 말씀을 잘 따르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였다.

- 그런데 우리가 만들어 놓은 어떤 제도와 전통에 의해서 우리 삶은 그것이 전부이며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만 의존하고 거기에다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된다면, 차선에 우선을 두고 정작 최선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한테 말씀하신다. 겉으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한테 응대하셨지만, 사실은 제자들이 그렇게 살지 않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존재가 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가 다분히 그런 우를 범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교회 생활이 익숙해지고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신앙적으로 성숙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삶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 위로 올려놓게 되는 위험한 일을 종종 하게 되는 것이다.
2. '위선'을 초래하는 아전인수적인 유권 해석
- 두 번째는 '위선'을 초래하는 아전인수적인 유권 해석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 위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전인수 격으로 유권 해석하는 데서 초래한다고 믿는다. 아전인수는 내 밭으로만 물을 끌어온다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한테는 아량으로 유리하게 또 유권 해석을 해서 나는 전혀 문제없는 삶을 산 것처럼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 예수께서 종교 지도자들이 위선을 초래하는 아전인수적인 유권 해석을 한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4-6절).

- 구약에서 부모 공경은 엄중한 하나님의 가치였다. 십계명 중에서 다섯 번째 계명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1-4계명 다음으로 나오는 인간을 향한 계명의 첫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다.

- 예수님은 오늘 본문 4절에서 신명기(5:16)와 출애굽기(21:17) 말씀을 인용하여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구약 시대에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거나 부모에게 경멸하거나 업신여기는 나쁜 말을 하면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돌로 죽임을 당했다.

- 그런데 이게 꽤 과격하게 보이기도 하고, 부모 공경하고 싶지 않는 자녀에게는 걱정거리가 되기도 한다.

- 유대인은 그럴 경우에 '사람의 전통'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게 바로 '고르반(Corban)'이란 제도다. '고르반'은 히브리말인데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뜻이다.

- '고르반'이라고 하면, "이것은 내가 하나님께 드리려고 준비해 놓은 겁니다" 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이 부모보다 더 중요하니까 "고르반" 하고 말해 놓으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 예수님한테 찾아와서 손을 씻지 않는다고 따지는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해석을 집어넣은 전통을 만들어 놓고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말씀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런 바리새인의 누룩 곧 가치에 물들지 않도록 이런 계기를 통해서 제자들만큼은 하나님 말씀을 표면적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지키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에 표면적인 것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말씀까지도 지킬 수 있는 제자들이 되기를 원하셨던 예수님은 이런 아전인수 격인 유권 해석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하셨던 것이다.

-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도록 우선 순위를 바꾼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계속해서 찾았다. 그것이 그들의 습관이 되고 관습이 되고 결국 자기 삶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된다. 말씀을 다시 바보처럼, 다시 처음처럼, 다시 초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내 삶의 영역들이 지금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말씀을 날마다, 제대로 읽어야 한다. 날마다 말씀을 들어야 하고 보아야 한다. 날마다 메모하면서 나한테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나한테 적용하면서 말씀을 봐야 한다.

- 손 씻는 것, 사람의 전통이 중요하다. 하지만 예수님이 핵심을 찔러 말씀하신다(11절). 제자들은 잘 깨닫지 못한다. 내 몸에 들어가는 것이 더럽거나 나를 더럽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 몸에서 나오는 게 나를 더럽게 만든다. 내 마음에 더러움이 있는 것은 말씀을 보면 볼수록 그것이 명확해진다. 그래서 내 마음을 조명하고 수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그 수술의 아픔도 감당해 낼 수 있는데, 말씀을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3. 사람 '시선' 의식하다 하나님 뜻을 놓치는 우매한 삶
- 세 번째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다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우매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 제자들은 이 순간에도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했다. 제자들이 나와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화가 난 것을 아십니까?" 하고 예수님께 귀띔을 한다(12절). 그랬더니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신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나무는 모두 뽑힐 것이다. 그러니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인도자들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13-14절)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우매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순종하기 때문에 세상의 권위자에게 순복하게 되더라도 그들에게 시선을 두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우리의 시선은 사람들에게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이다. 나의 시선을 들어 하나님을 볼 때 내 삶이 변하기 시작한다. 변질된 삶이 본질된 삶으로 돌아온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선이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면, 지금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 하나님께 시선 고정, 이것이 예수께서 제자들과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다.

- 코로나 시련과 위기는 오래갈 것 같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우리 삶 속에서 코로나보다도 더 위태롭고 더 심각한 이슈들이 또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기에 배워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여기에, 이 상황에 꽂히지 말자는 것이다. 그 문제에 우리의 시선을 두지 말고, 세상 사람이 불안해하는 곳에 우리의 마음과 귀를 기울이지 말고, 이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누가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소중하며 누가 더 귀하고 어떠한 것이 우리 삶에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그 중심을 찾고 살아간다면, 이 시기에도 하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께 부끄럼 없는 온전한 삶을 살게 될 줄 믿는다.

▸설교요약/정리: 안재환(원천침례교회 집사, 흥사단 부이사장)
▸영문자막 번역/정리: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
정두준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문서기)
Eli Lee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상편집: 강한빛(오롯영상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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