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예배 설교(2020. 7. 19) - 김요셉 원천침례교회(수원) 목사 -

"큰 믿음"
(마태복음 15장 21-28절)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 오늘 본문에서 두로와 시돈 지방(유대 땅을 벗어난 이방인 지역)까지 제자들과 함께 오신 예수께서 이번에는 가나안 여인의 애절한 도움 요청에 처음부터 묵비권을 행사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보아 온 예수님의 긍휼의 모습과는 다른 의외의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예수님은 정말 왜 그러셨을까?
- 악한 귀신이 들린 딸 때문에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 앞에 그리고 제자들이 있는 곳에서 나와서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간절히 호소하는 데도, 예수님은 왜 그 여인의 호소에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까? 예수님이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고 하시면서 매몰차게 여인의 간청을 거절하신 까닭은 무엇일까? 심지어 여인이 무릎 꿇고 노골적으로 도와 달라고 했을 때, 그 여인더러 개라고 하면서 "자녀의 떡을 개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까지 하셨을까?
- 진정으로 예수님의 마음에는 긍휼함이 없었던 것일까? 예수님의 특이하신 반응은 여인 때문이 아니라, 제자들 나아가 오늘 우리 크리스천을 향해 중요한 메시지를 주시려고 하는 데 있다고 본다.
-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 같기도 하다. 예수님을 처음 봤으며, 구약 성경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의 기도에 오히려 정반대의 행위를 하시고 처방을 내리신다.
- 여기서 예수님은 '큰 믿음'을 나타내는 '메가스(mevga)'라는 헬라 단어를 사용하신다. 메가스는 성숙한 믿음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몇몇 주석은 말하고 있다. 이 여인의 믿음은 처음에는 작았지만, 예수님 앞에 나와 간절하고 끈질기며 겸손하게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반응과 행위를 통해 '큰 믿음'이 되었다.
- 사실 가나안 여인의 믿음 이야기는 이 여인에게만 은혜가 되거나 큰 경험이 된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더 중요하게 구속사적인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 컸다.
- 제자들도 예루살렘에서 온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가랑비 옷 젖듯이 율법적이고 관습적인 영성에 물들게 될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그런 제자들을 데리고 아예 이스라엘 땅 밖으로 나가신다(21절). 이방인만 있는, 유대인이 없는 두로와 시돈 지방까지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다. 그곳에서 이방 가나안 여인을 만난다(22절a). 이 가나안 여인의 기도와 호소의 소리를 듣고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가 오가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신 것이다(22절b-28절). 이 여인의 믿음이 제자들의 믿음보다 더 컸다.
- 이 상황을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이 유대인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두로와 시돈만이 아니라 땅끝까지 가서 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은 간절한 기도, 끈질긴 기도, 겸허한 기도를 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통해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우월적인 종교심의 잔재가 남아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고, 여인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조명하길 원하셨다고 믿는다.
- 결론을 말씀드렸으니 이제 설교를 마쳐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저는 오늘 신학적인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So What? 그래서 이 말씀이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이 말씀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는 가운데 성령님이 제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다. "너는 네 자녀를 위해 이렇게 간절하고 절박하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존한 적이 얼마나 되느냐?"
-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우리는 과연 이 가나안 여인과 같은 모습으로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1. 간절한 기도

-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이 보여 준 코람데오 삶의 첫 번째 본질은 '간절한 기도'다.
- 이 여인은 간절했다. 예수님 앞에 몹시 간절했다.
- 가나안 여인의 딸에게 언제부터 어떤 형태로 흉악하게 귀신 들린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는지 마태가 기록하지 않아서 잘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여인에게는 제자들에게도 아직 형성되지 않은 확신, 곧 딸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다윗의 자손이신 메시아 예수님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소리 질렀던 것이다.
- 우리에게 기도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거의 다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여인처럼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가? 이 여인처럼 노골적으로 자녀를 위해서 먼저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있는가?
- 자녀의 모습 속에 문제가 일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먼저 기도부터 하는가? 기도부터 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기도부터 하지 않는다.
-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바라보면서 저는 제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과연 나는 이 여인처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만 나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기도한다(22절).
- 유능한 아빠와 무서운 엄마가 되기 전에 예수님 앞에 나와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가 되면 어떨까? 오늘 본문의 여인처럼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호소하는 부모 말이다. 다윗의 자손이신 메시아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그분만이 내 문제와 자녀의 문제에 궁극적인 해답임을 진심으로 또 삶으로 믿고 있음을 보여 주는 제자가 될 수 있을까? 이 여인은 공개적으로 노골적으로 예수님 앞에 나와서 기도했다. 같이 있던 제자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딸을 위해 예수님께 호소했다. 우리 부모님은 언제 이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한 적이 있는가?
- 간절한 기도의 원동력은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2. 끈질긴 기도

-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이 보여 준 코람데오 삶의 두 번째 본질은 '끈질긴 기도'다.
- 간절함과 더불어 이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오는 자세를 보면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이 있다. 예수님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심지어 멸시하는 듯한 말씀을 하셔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기도다.
- 요즘 교육학에서 뜨는 개념 중에 '그릿(GRIT)'이라는 것이 있다. 앤젤라 더크워스 교수의 책 이름이기도 한데, '뚝심'으로 번역이 되기도 한다. 그릿은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과 집념이 있는 끈기를 말한다. 힘들고 어려운 난관 가운데서도 마음을 접지 않는 것이다.
- 예수께서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 끈질긴 기도의 중요성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해야 함을 보여 주신다(눅 18:2-8).
-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끈질긴 간청에 못 이겨 마침내 그 소원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택하신 백성의 간청을 들어주시지 않을 리가 없다는 가르침을 주신다(눅 18:7-8).
- 자녀 혹은 가족을 위해 간절하고도 끈질긴 기도를 어느 정도까지 하고 있는가? 한두 번은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반응이 없으면 쉽게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가? 예수님의 노골적인 무반응과 거절의 말씀을 듣고도 포기하지 않은 가나안 여인은 자기 자신을 더 낮추고 더 겸손한 자세로 예수님의 그 말씀을 더욱 수용해 가면서 곧 저항과 거절을 다 품어가면서 계속 기도한다.
- 말을 많이 하고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하는 기도는 중언부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6:7-8). 그러나 예수님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는 것은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니다. 예수님도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기도하셨기 때문이다(눅 22:44).
-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세 번씩 반복해서 간절히 기도하셨다. 하나님도 예수님이 기도할 때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다 알고 계시는데, 정작 당신은 왜 중언부언 하신 것일까?
- 예수님은 왜 세 번씩이나 기도하셨을까? 예수님이 한 번 기도하신 걸 하나님이 모르셨을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세 번이나 기도하신 이유가 있다. 주파수를 하나님한테 맞추려고 하신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라디오나 오디오를 켜고 듣고 싶은 방송이 있으면 그 방송의 주파수에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는 내 힘이 아니라,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튜닝 하는 힘이다. 내 주파수를 하나님의 주파수에 맞추기 위해 더 열심히, 더 세밀하게 튜닝 하는 노력 곧 끈질기게 반복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 자녀를 위해 혹은 내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내 마음의 시작은 그런 기도이지만,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면 튜닝 되기 시작한다. 학교에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혼을 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신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내 튜닝이 바뀌기 시작할 때, 간절하고 반복적인 내 기도는 효험 있는 기도가 된다.
-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 그런데 그 역사하는 힘은 내 안에서 시작된다. 내 뜻이 하나님의 뜻으로 점점 튜닝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3. 겸허한 기도

-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이 보여 준 코람데오 삶의 세 번째 본질은 '겸허한 기도'다.
-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과 기도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주춧돌은 그 마음가짐에 있는 겸허함이다. 구약 시대의 정서로만 형성된 제자들의 종교관을 확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성 속에 이 여인에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반응과 대화가 엄연히 존재하였다.
- 묵묵부답하셨던 예수님에게 몇 번씩 큰 소리로 울부짖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여인의 마음속에 절박함만이 아니라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겸허한 마음, 가난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25-28절). 상처 입기 충분한 주님의 말씀, 곧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음을 담아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고 반응하며 기도한다.
- 우리 안에 가나안 여인과 같은 진정한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기도하는 '큰 믿음'이 있는가?
- 공개적으로 기도 제목을 내놓지 못하는 우리의 망설임 중에는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자존심 상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몰래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 기도 제목은 목사님에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다. 중보기도 팀에서 기도하는 기도 제목들은 사실상 공동체를 통해 기도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소원한 사역이다.
- 그런데 이 여인은 제자들이 함께 있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자신의 딸을 고쳐 달라고 모든 자존심 다 내려놓고 겸손하게 예수님 앞에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기도 제목을 드린다.
- '믿음'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큰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보를 많이 갖고 있고 경험이 많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나와 모든 것을 간절하고 끈질기며 겸손하게 기도하며 맡길 수 있는 것이 바로 '큰 믿음'이 아닐까? 때로는 믿음이 작고 때로는 믿음이 없지만, 간절한 마음과 끈질긴 마음, 무엇보다도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와서 모든 것을 맡기는 여러분과 제가 되길 축원한다.

▸설교요약/정리: 안재환 (원천침례교회 집사, 흥사단 부이사장)
▸영문자막 번역/정리: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
정두준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문서기)
Eli Lee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Deloitte 리스크자문본부)
▸영상편집: 강한빛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상편집팀장, 오롯영상프로덕션 대표)


저작권자 © 크리스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