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의 한 캠핑장을 찾은 야영객들이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지난 2일 산곡감리교회 예배당으로 대피해 생필품을 전달받고 있다. 산곡감리교회 제공

충북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지난 2일 오전, 김석범(46) 제천 산곡감리교회 목사는 전화로 성도들의 안부를 물으며 예배를 드리기 힘들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산사태로 떠밀려온 흙더미와 부유물이 인근 저수지 수문을 가로막으면서 둑이 무너졌고 하천이 범람해 시내에서 교회가 있는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자취를 감춘 상황이었다.
“밤사이 물 폭탄이 쏟아져서 오전부터 동네 주민들에게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어요. 교회 앞 마을회관에 어르신들이 한두 분 계시기에 인사 나누며 댁으로 안내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개 너머에서 진흙 범벅이 된 아이를 안은 아주머니들이 쏟아져 내려왔습니다. 아비규환이었죠. 본능적으로 큰일이 났다 싶었습니다.”


인근 캠핑장에 엄청난 양의 빗물과 토사가 덮쳐 차량과 텐트까지 버려둔 채 황급히 대피한 사람들이었다. 가족을 먼저 대피시킨 뒤 미처 사고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한 한 가장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지며 야영객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었다. 마을회관으로 향한 사람들은 이내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최대 수용인원이 30여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4일 “뒤늦게 대피한 분들까지 160여명이 내려온 상황이라 다급하게 교회로 안내했다. 예배당이 긴급대피소로 변한 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다중이용시설인 교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도 문제였다. 김 목사는 제천시청, 보건소와 협력해 대피객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체온을 확인하며 자료를 기록했다.
교회 주방은 대피객을 위한 간이식당이 됐다. 시에서 지원한 컵라면 빵 음료가 경황없이 사고현장을 떠난 이들의 허기를 채웠다. 이날 오후 3시, 시에서 마련한 버스를 이용해 공식 대피소가 마련된 제천체육관으로 이동하기까지 교회는 여행객에서 갑작스레 피란민 처지가 된 이들을 위한 피난처가 돼줬다. 김 목사는 “성도들에게 예배 취소 연락을 할 때만 해도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는데 돌이켜보니 하나님께서 고난당한 이들을 위해 예배당을 예비해두신 것 같다”고 말했다.

야영객들에게 휘몰아친 위기의 현장은 일단락됐지만 제천 지역의 시름은 여전하다. 쓸려온 토사 사이로 물이 흘러 전에 없던 계곡이 생겼고, 수마가 할퀴고 간 주민들의 보금자리는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부서졌다.
김 목사는 “동네 곳곳이 발목이 푹 빠질 정도로 진흙밭이 됐지만 막막한 심정으로 도움을 기다리는 주민들이 있어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다”며 복구현장으로 갈 채비를 했다. 그러면서 “부임 4년여 만에 처음 겪어보는 수해지만 교회가 위기의 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며 “폭우에 따른 피해가 더이상 없도록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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