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프 티토(Josip Broz Tito)

1991년 20세기 최악의 내전을 겪고나서 이 나라는 비로서 독립을 선언합니다. 크로아티아인 아버지와 슬로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요시프 티토(Josip Broz Tito, 1892~1980)가 1944년 소련의 지원을 받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점령합니다. 이듬해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 공화국(유고 연방-남슬라브 민족의 땅'이란 의미)'을 세웁니다.

1980년 티토 대통령이 사망 후 동유럽에 자유화 운동이 일어나 1991년 연방에 속해 있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합니다. 유고 경제를 이끈 두 나라 중심으로 종교, 민족, 언어의 갈등, 복잡한 역사의 불만이 증오심 되어 내전의 소용돌이로 들어 갑니다.(유고 연방 :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유고 연방의 주도국이었던 세르비아와의 관계는 전쟁을 치러서 독립할 정도로 크로아티아와 사이가 나쁘답니다. 건물에서 눈에 띄는 총탄자국 들이 여전이 곳곳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한 때는 한 나라이기도 하였던 옛 유고 연방에 속해 있었던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등 주변국들과는 영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유고 연방으로 세르비아가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포위하고 포격을 퍼 붓고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원수가 되어 죽고 죽이는 일을 벌입니다. 당시 유럽의 많은 지성인들과 시민들이 성벽 위에서 인간방패(두브로브니크의 친구들)를 만들어 폭격을 저지하였답니다. 그때의 상처들을 유네스코와 국제 사회의 지원으로 복원되어 옛 모습의 아름다운 도시로 잘 보존되어 있음을 보며, 인간 방패되어 손에 손잡고 성벽에 길게 길게 서 있었던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큽니다. 당시 힘이 약했던 크로아티아는 자국 내 세르비아계를 축출하는데 4년이 걸렸답니다.


크로아티아인은 민족적 자부심도 대단하답니다. 아직도 탄흔의 흔적과 폐허되어 있는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수 십년이 되었어도 회복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1254~1324)'의 고향인 코르출라는 크로아티아랍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자란 어린이 들이 “이 바다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유명한 항해사들이 나올수 있었으리라 여겨 집니다.

관광으로 100억의 수입이 있고 유고 시대에는 조선업이 세계3위로 선박을 발주하였다는 이 나라에 한국의 현대 자동차 가 전기차 관련에 천억을 투자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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