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셉 목사 3분 설교 메세지

❋ 주일 예배 설교(2020. 8. 9) ❋
- 김요셉 원천침례교회(수원) 목사 - "오직 예수"


(마태복음 17장 1-13절)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침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 모습이 영광스럽게 변모되는 변화산 사건의 이야기는 공관복음인 마태·마가·누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른 디테일(Detail)과 살짝 다른 각도에서 조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태, 마가, 누가도 다 기록했지만, 특별히 마태와 누가의 기록을 비교해 보았다.

- 특히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마태가 묘사한 것보다 조금 다르거나 추가한 부분이 몇 군데 있으며, 누가가 기록하지 않은 부분을 마태가 마태복음에 기록하고 있는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 예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가신 것은 엿새 후 무렵인 팔 일쯤 되어서였다. 이것은 유대인의 날 계수법과 헬라인 중심의 계수법의 차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 예수님이 변화산에 오르신 이유는 기도하러 가신 것이었다. 이 상황은 겟세마네와 똑같다. 제자들이 변화산에서는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지만, 겟세마네에서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보게 된다.

▸ 예수님의 용모는 기도하실 때 변한 것이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가운데 얼굴 모습이 변하고 옷이 희어져 눈부시게 빛나게 되었다.

▸ 예수님이 모세, 엘리야와 나눈 대화 내용이 나온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 예수님 세 분이 모여서 앞으로 일어날 예수님의 구속사의 가장 중요한 역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 곧 십자가의 사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신 것이다.

▸ 겟세마네에서처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는 잠들어 있었다. 제자들은 기도하러 자주 따라가서 예수님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고 오래 하시는지 알고 있다. 기도하러 따라가면 이제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졸거나 쿨쿨 자는 것은 습관이 된 제자들이었다.

▸ 베드로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 표현은 생각지 않고 말한 결과였다. 누가는 베드로가 그렇게 표현한 말 뒤에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 하나님의 임재가 두려움을 자아냈다. 마태도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하고 묘사하고 있지만, 누가는 그 부분을 조금 더 강력한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 그런데 마태는 누가와 달리 예수님이 하산하면서 하신 엘리야 이야기를 연결한다. 마태는, 메시아 곧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구약의 예언을 이야기하고 그 엘리야가 바로 침례 요한이었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추가하고 있다.

- 복음서의 사건을 건성으로 이해하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 특히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려고 작정한 우리에게 좀 더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복음서를 아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알고 따르는 삶에 큰 도움이 된다.

- 그러나 우리가 변화산 사건에 함축되어 있는 신비한 디테일을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더라도 이야기의 중심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오직 예수(Only Jesus)', 곧 예수님뿐이다.

- 변화산은 무엇이 변했기 때문에 변화산이라고 했을까?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다.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이 변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변한 것이다. '오직 예수'는 그대로다. 그러나 제자들의 눈이 띄어지고 귀가 열리고 마음이 뜨거워져서, 그들이 '오직 예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한 것이다.


1. 오직 예수만 가지신 '신성': 주님을 신뢰합니다

- '오직 예수'의 첫 번째는 예수만 가지신 신성으로, 그것은 우리에게 주님을 신뢰하게 한다(2-3절).

- 변화산에 올라와서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는 예수님의 속성 중에 신성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기적을 경험해도 말씀에 감동 받아도 심지어 입으로 고백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님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했다.

- 예수님은 완벽한 하나님(Fully God)이시고 완벽한 사람(Fully Man)이셨다. 이런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 그들은 많이 이해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배고프셨고 주무셨으며 우셨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완벽한 하나님(Fully God)이시라는 신성에 대해서는 숱한 기적을 경험하고 말씀에 감동을 받아도 심지어 베드로가 바로 앞의 16장에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면서도 잘 바뀌지 않는 고정 관념(Stereotyping)이 있었다.

- 인간은 모두 고정 관념이란 함정에 쉽게 빠진다. 고정 관념은 사람이 어떤 생각과 관념을 가질 때 그것이 잘못되어 누군가 설득을 하고 혹은 상황이 바뀌어도 당사자가 그 생각 또는 관념을 수정하지 않는, 지나치게 일반화되고 고착된 사고방식이다.

- 현재 미국에서 강렬하게 퍼지고 있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의 밑바닥에는 유색 인종 특히 흑인이 미국에서 경험하게 되는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우리는 서로를 향한 고정 관념을 많이 갖고 있다. 우리가 쓰는 말(수구꼴통, 빨갱이, 장사꾼, 꼰대, 된장녀 등) 속에서 고정 관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향해서 우리가 개인의 인격적인 차이와 독특함, 또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움을 무시한 채 일방적이고 고정적인 편견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고정 관념은 나쁘게 보지 않아도 생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대로 보지 못하고 충분히 보지 못할 때 생긴다. 젊은이는 모두 경험 없이 무모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의 생각이나, 늙은이는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도전적이지 못하다는 젊은 사람의 생각이 여기에 속한다.

- 달라스 윌러드는 <잊혀진 제자도(Great Omission)>라는 책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예수님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최고의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의견을 물어볼 수 있는가?

-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있지만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은 착하고 따뜻하며 인내하는 분이라는 것은 용납을 하더라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정도의 정서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분에게 의견을 물어볼 만큼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이런 고정 관념을 갖고 있다.

- 예수님이 내 삶과 내 문제와 내 궁금증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분을 제대로 신뢰하고 경배할 수 있을까?

- 회사에서 어려운 난제를 풀지 못할 때 예수님께 자문을 구하는가? 자녀의 학교 진학에 대한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예수님을 찾는가?

- 제자들의 대부격인 베드로의 예수님을 향한 고정 관념이 이 변화산 사건으로 더 많이 깨지고 변화하는 것을 본다. 변화산 기적의 의미는 예수님의 변화보다는 세 제자의 예수님을 대하는 마음의 변화에 더 큰 역할을 하기 위함이라고 믿는다.


2. 오직 예수만 모실 '장소': 주님을 경배합니다

- '오직 예수'의 두 번째는 예수만 모실 장소로, 그것은 우리에게 주님을 경배하게 한다(4절).

- 누가복음은 마태보다는 좀 더 적나라하게 초막 셋을 짓겠다는 베드로의 말 다음에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는 해석을 덧붙인다. 베드로의 이런 표현 문제가 잠시 뒤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교정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모세, 엘리야와 예수님을 동급으로 생각하는 착각이 교정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아들 되심 즉 삼위일체성을 각인시켜 주시면서 엄중히 경고하시는 말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5절)는 말씀을 듣게 된다.

- 초막은 구약 시대의 예배 처소를 상징한다. 그런데 베드로는 착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모실 장소를 모세와 엘리야하고 똑같이 생각했던 것이다. 그게 아니다. '오직 예수'만 모시고 경배해야 된다. '오직 예수'만 모시는 장소가 우리 마음과 삶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예수'만 경배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다른 대상과 동일시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하나님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하나님 그분이 아님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 최근 원천교회의 동역자들에게 제가 고백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원천교회를 세워 주시면서 저한테 비전과 통찰(Insight)과 축복을 주셨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원천교회를 공동체성이 강한 하나님의 원천 공동체가 되도록 작은 교회 형태로 주신 것이다. 그리고 원천교회 안에 18개의 작은 교회가 생길 때까지 하나님께서 엄청난 열매를 주셨다. 그런데 예수님만 모시는 그 공간에서 하나님만 경배해야 되는데, 어느덧 저도 모르게 제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작은 교회라는 비전을 예찬하고 예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교회가 중심인 줄 알았다. 아니다. 예수님만 경배하여야 한다. '오직 예수'다.

- 우리 안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는 경우가 있지는 않은가? 내 자녀가 그럴 때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하나님보다 더 소중할 때가 있다. 우리가 회복해야 될 것이 있는데, '오직 예수'만 모셔야 하는 우리의 장소가 있고, '오직 예수'만 경배해야 하는 우리의 소명이 있는 것이다. 제자는 '오직 예수'만 경배하는 사람이다.

-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경험하고 40일 동안 그분과 함께했던 11명의 제자들 가운데에도 승천하시는 그 순간까지 '오직 예수'만을 경배하는 삶이 쉽지 않았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마 28:16-17).


3. 오직 예수만 주시는 '말씀': 주님을 순종합니다

- '오직 예수'의 세 번째는 예수만 주시는 말씀으로, 그것은 우리에게 주님을 순종하게 한다(5-9절).

-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을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는 베드로의 말(4절)을 듣는 순간 하나님은 "너희는 내 아들 예수 말만 들으라"(5절b) 하신다. '오직 예수'는 우리에게 '오직 예수'만 주실 수 있는 말씀이다.

- 제자들에게 변화산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서 말씀하실 정도로 더 중요하고 시급한 말씀이 있었다. '오직 예수'만 경청하고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 베드로의 착각이 있다. 변화산의 신비한 체험만을 원하고 갈보리산의 희생과 아픔은 부인하려는 잘 깨어지지 않는 그의 경향성이 문제였다. 너무 좋으니까 그냥 여기 있자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이 눈을 떴을 때 '오직 예수'만 보였는데, 그들이 순종해야 되는 예수님의 말씀이 뭐였는가? 산에서 내려가자는 것이다.

- 변화산의 체험은 영적으로 큰 체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과 목적, 하나님의 뜻에는 변화산에서의 놀라운 경험, 예수님의 광채를 체험하고 예수님의 놀라운 신성을 목격하는 체험이 그 끝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우리가 가야 할 그 순종의 걸음에는 영적인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예수님의 삶과 목적, 구속사의 역사는 교회에 와서 은혜 받고 감동 받아 마음속이 뜨거워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산에서 내려가 갈보리 언덕 십자가까지 예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제자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예수님의 삶과 목적이고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아픔과 어려움, 희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끝까지 따르는 사람에게는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고 순종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 너는 내 기쁨에 동참하리라"(마 25:21,23)는 예수님의 인정하심을 받게 될 줄 믿는다.

- 마태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말씀하신다.

- '오직 예수'는 그분만 신뢰하고 그분만을 경배하며 그분만을 순종하는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가치임을 굳게 믿는다.


▸설교요약/정리: 안재환 (원천침례교회 집사, 흥사단 부이사장)
▸영문자막 번역/정리: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
정두준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문서기)
Eli Lee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Deloitte 리스크자문본부)
▸영상편집: 강한빛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상편집팀장, 오롯영상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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