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ander A. Pieters. 1871-1958 (Entering Korea in 1895)

미국 LA 파사디나 지역 외곽의'마운틴 뷰'공용묘지에 있는 알렉산더 피터스 선교사 묘지.

알렉산더 피터스 선교사는 구약성경을 한글로 번역해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공로자이다. 조선(한국)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만큼, 피터스 선교사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결혼생활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1900년부터 3년 동안 피터스 선교사는 미국의 맥코믹 신학교에 유학해서 신학교육을 받은 후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때 신학교에서 같이 신학수업을 받던 엘리자베스 캠벨(Elizabeth Campbell)을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신혼의 부부는 조선(한국)으로 돌아왔고, 피터스는 구약성경 번역사역에 전념했다. 그런데 서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엘리자베스는 폐결핵에 걸렸고, 결혼생활을 4년도 넘기지 못하고 33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에서 별세했다.
조선(한국)에 왔던 초기 선교사들이나 가족들 중에는 폐결핵이나 풍토병으로 사망한 분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조선(한국)의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캠벨 여사는 서울 양화진의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는 먼저 떠난 아내 엘리자베스를 추모해서 후일 세브란스 병원에 결핵환자 진료소를 마련했고, 크리스마스 실 운동도 전개했다.

그 후 피터스 선교사는 세브란스 병원에 의료선교사로 와 있던 여의사 에바 필드(Eva Field)와 재혼했다. 필드 여사는 두 아들을 낳았으나, 불치의 암으로 그가 환자를 돌보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했다(1932년). 그도 엘리자베스와 마찬가지로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1941년 피터스 선교사는 70세가 되어 성경 번역자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46년 동안 봉사했던 조선(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캘리포니아주 LA근교 파사디나(Pasadena)시에 있는 은퇴 선교사 주거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58년 8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피터스 선교사가 이룩한 선교사역

첫째는 권서사역과 성경반포사역이다. 1895년 미국성서공회의 권서인으로 조선(한국)에 입국한 후 1898년까지 3년 동안 충청도와 전라도를 순회하며 성경을 반포하다 1898년부터 1899년까지는 대영성서공회 한국 권서 담당 부총무로 역시 성경반포 사역에 매진하였다. 그의 사역은 성경으로 시작한 한국교회의 선교사역의 성격과 방향에 참으로 일치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시편 가운데 저주시를 제외한 최초의 구약번역 <시편촬요>이다. 히브리어에 능통한 유대가정에서 태어난 피터스 선교사는 뛰어난 언어적 감각으로 시편의 음률을 그대로 살려 냈다. <시편촬요>는 처녀작이었지만 그를 뛰어난 성경번역자로 인정받게 만들었다. 한국인들이 시편을 즐겨 읽고 묵상하는 전통은 어느 정도는 그의 번역 때문일 것이다.

셋째는 복음전도사역이다. 필리핀에서 1904년 서울로 임명받고 진행한 서울의 남부지역에 그가 설립한 교회들이 참으로 많다. 그는 아내와의 질병과 죽음이라는 쉽지 않은 환경과 직면하면서도 주어진 사역에 충실했다. 외형적으로 다른 선교사들에 비해 그가 이룩한 결실이 남달랐다. 이들 교회들은 100년을 지났거나, 맞고 있거나, 아니면 곧 맞게 될 교회들이다.

넷째는 성경번역이다. 1906년 성경번역위원으로 합류한 후 그는 기쁨으로 성경번역사역을 감당했고, 자신의 어학적인 재능을 이 사역에 십분 활용하며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았다. 구약번역에서 피터스 선교사의 역할은 독보적이었다고 평할 수 있을 듯하다.

다섯째는 찬송가 발전이다. 1898년 한국장로교 초기의 찬송가인 <찬셩시>에 14편의 시편 은율 찬송을 게재, 한국찬송가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바이지만 이 부분은 그가 이룩한 중요한 공헌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사용하는 찬송가에도 그의 찬송가 가사가 다섯편이나 실려 있다.

그가 짧은기간 동안에 조선(한국)에 이룩한 이 모든 업적을 통해 볼 때 우리가 피터스 선교사를 성경번역자, 찬송가 작사자, 복음전도자로 부르기에 충분하다.
피터스 선교사는 1895년 23세에 주님을 영접하고 1910년 약관 38세까지 불과 15년 동안 너무도 경이적인 결실을 거두었다. 어떻게 그가 그토록 놀라운 결실을 거둘 수 있었는지 놀랍다. 거룩한 부르심을 받고 바울처럼 사명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정답일 것이다.
사도 바울의 극적인 회심이 마치 그의 유대주의 열심을 기독교적 열심으로 변화시켜주었던 것처럼 피터스 선교사의 경우도 회심 이후 그의 신앙배경, 교육배경, 성장배경이 거룩한 목적을 위해 쓰임 받았던 것이다. 그의 인생 자체가 마치 바울처럼 극적이고 경이적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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