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는 보스니아의 네움 호텔에서 숙박 후 일행은 바로 옆 도시지만 나라가 다른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부니크로 향합니다. 아드리아해의 진주. 지구의 낙원이라고 불리우는 유네스코 지정(1979년) 세계문화유산을 찾아갑니다

'꽃보다 누나'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살짝 스치며 맛을 본 이 도시가 필자에게도 가슴 설레이는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너무 예쁜 발칸에 필자와 일행이 매혹됩니다. 특히 크로아티아의 파란 아드리아 해 바닷물과 주황색 지붕들의 색조화는 눈이 닿는 곳마다 어디에서 보아도 엽서의 한 폭이지요. 반들거리는 돌길과 골목길에서 옛 것과 새 것이 잘 어울려 있습니다. 그리고 오랜시간의 이야기들을 보고 듣습니다. 희망과 삶이 녹아 있는 아드리아 해, 번성하였던 이 해안 도시에서 꿈과 역사, 그리고 낭만을 만납니다.

가장 남쪽의 두브로부니크는 바다 건너온 사람들이 정착한 도시로 아드리아 해가 만든 문화, 역사, 경제와 해양의 중심지입니다. 7세기경 고대 라구사(두브로부니크의 이탈리아식 명칭)가 형성된 후 중세시대를 거쳐 크로아티아 극 남부지역의 도시로 발전합니다. 1189년에 이 도시를 언급한 공식 문서와 1272년에는 정치, 법률과 규정, 행정, 해상무역, 건축 등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답니다. 하여 이 도시의 역사가 아주 길며 그 긴 세월동안 국민들의 용기와 외교술로 공화국의 자주권을 지켜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866년에는 약 15개월동안 사라센인들의 지배를 견뎌야 하였고, 1205년-1358년 사이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후 크로아티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자치 공화국으로 자주권을 획득했습니다. 작지만 지혜로웠던 이 공화국은 약탈하고 파괴하려던 적들로부터 적절한 외교술로 수많은 침략을 이겨내면서 도시를 발전시킵니다. 이웃 국가들과는 다르게 그 당시 막강하였던 오스만 제국에게 매년 12,500개의 금화를 이스탄불에 지불하며 자치권과 자유무역을 지켜 왔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도시입니다. 차지려면 차지하기 힘들었고 관리 또한 힘들어 독자적으로 놓아둔 도시가 아닐까요?

두브로부니크는 근대적인 법과 제도를 받아들여 1272년부터 공화국을 운영합니다. 1301년에 공적인 의료서비스를 시작했으며, 1317년에는 약국이 처음 생겼고, 1377년에 전염병을 치료하는 병원이 시작 됩니다. 1418년에 노예무역을 폐지하며 1432년에는 고아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1436년부터는 수도 시설을 설치하여 20km 떨어진 곳에서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와 분수를 통해 공급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지상에서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하였고, 영국의 시인 바이런 경은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극찬한 이 도시는 유럽인들의 최고의 휴양지로 유명합니다. 21세기에는 아시아, 미국 등 세계 에서도 찾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전성기는 15-16세기로 영토확장과 높은 성곽으로 주민들이 보호받으며 도시계획 하에 주거지, 궁전, 교회, 수도원 등을 건축합니다. 해상무역과 동시에 소금 생산과 수출이 활발한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지중해지역의 180 여개의 대형선박과 4,000여 명의 선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세계 여러 곳을 항해하며 유럽의 주요국가들과 동맹관계를 맺습니다.

두브로부니크는 천년의 역사 속에서 참담한 전쟁을 일으킨 일이 없이 훌륭한 외교로 자치권을 지켜내면서 미국의 독립을 인정한 세계 최초의 국가이기도 합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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