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셉 목사 3분 설교 메세지

❋ 주일 예배 설교(2020. 9. 27) ❋

- 김요셉 원천침례교회(수원) 목사 -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나이까?"


(마태복음 20장 1-16절)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 공동체의 가치(어린 아이 같이 되어라, 재물을 팔아서 나누어 주라)를 가르치시면서 20장에서 '포도원의 품꾼' 비유를 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때에 품꾼의 비유를 하셨을까? 저는 예수님의 비유와 말씀이 요즘 시대 상황에서 우리에게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It's not fair." "엄마는 왜 나만 차별해?" 둘 이상의 자녀를 키워 보거나 여러 명의 아이를 보살펴 본 적이 있는 분은 공정에 대한 이런 자녀나 아이의 아우성을 통해 사람은 일찍부터 불공정한 처사에 대한 민감성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공정 혹은 불공정에 대한 민감성은 가르치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형성된다. 그래서 가르치지 않아도 공정을 기대하고 있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 오늘 설교 제목은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나이까?'다. '왜 그들을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느냐'는 물음이요 항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드신 '포도원의 품꾼' 비유에서 품꾼이 포도원 주인에게 공정하지 않다고 시비하고 있다. 품꾼의 공정성 시비는 공정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오늘 우리 사회와 이 시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말씀이라고 믿는다.
- 공정이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된 이 시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 우리가 가져야 할 공정에 대한 기독교적, 성경적 가치는 무엇일까?
- 예수님 당시에 농경 사회 그것도 유목민 삶이 중심이던 중동에서는 일정한 봉급을 받고 직업 보장이 되지 않았다. 날품팔이 삶이 대부분이던 그 시대에 농장의 주인이 품꾼을 고용하는 것은 그 자체가 큰 은혜였다. 많은 사람이 일하기를 원했지만 정작 제대로 대우를 받고 일자리를 찾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 같았다.
- 그런데 포도원 주인은 포도를 수확할 시기가 되어 많은 일꾼 중에 선택받은 몇몇 품꾼에게 당시로는 충분한 일당인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데리고 와서 일을 시켰다. 그들은 큰 은혜를 입은 것이다.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선택을 받았기에 이미 주인에게 큰 은혜를 받은 데다 충분한 일당도 보장받았다.
- 주인은 이미 고용한 품꾼만으로도 충분히 포도를 수확할 수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포도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선택받지 못한 품꾼이었다. 주인은 포도원 밖에서 놀고 서 있는 품꾼을 볼 때마다 들어가 일할 수 있도록 은혜의 기회를 준다. 우리로 말하면, 시대마다 하나님이 풍성한 은혜의 포도원에 들어가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다.
- 해가 저물어 일을 마칠 때 문제가 일어난다. 통상적인 관습을 깨고 제일 마지막에 들어온 품꾼부터 품삯을 지급한다. 그런데 늦게 들어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품꾼이 한 데나리온(온전한 일당), 원래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한 품꾼에게 약속한 것과 똑같은 한 데나리온을 받는다.
- 제일 마지막에 들어온 품꾼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 있던 일찍 들어온 품꾼은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했기에 당연히 자기는 주인이 약속한 한 데나리온보다 월등히 높은 품삯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주인은 일찍 들어온 품꾼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준다. 그때 품꾼들의 아우성이 터진다.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나이까?" 과연 그 포도원 주인은 공정(fair)하지 못한 주인일까?
-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런 마음을 가진 적은 없는가? 왜 나만 이렇게 축복을 적게 주시는 것일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걸까? 하나님은 공정하지 않아!
- 저도 어렸을 때 혼혈아의 아픔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불공정(unfair)하시고 정말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나만 왜 이렇게 생겼을까? 왜 나만 코가 오뚝하고 눈이 파랗고 크며 머리는 금발일까? 과연 공평하지 못한 하나님이신가?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정말 공정인가, 아니면 은혜인가?
- 공정은 권리가 있는 사람이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주장할 권리가 있는가? 오히려 공정을 따지기 전에 형벌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람의 공정'과 '하나님의 은혜'가 대칭적인 가치로 나타나 있음을 보려고 한다.
- 그러면 은혜와 공정이 대칭적이어서 완전히 극과 극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께서 그것으로만 우리를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은혜로 대하기로 결심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품꾼 비유의 핵심 교훈이다.
- '공평(Equality)'은 모두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며, '공정(Equity)'은 사람마다 가진 자원과 능력이 다른 것을 여러 상황과 실정을 고려해 주는 것이다. 요즘 공평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을 공정이라 한다.
- 높이가 큰 담이 있고 세 사람은 그 너머를 보려고 한다. 키가 큰 사람은 가만히 서 있어도 보이고, 키가 보통인 사람은 까치발을 하면 보인다. 하지만 키가 작은 사람은 까치발을 해도 보이지 않는다. 이때 공평은 모두에게 같은 높이의 발 받침대를 주는 것이고, 공정은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좀 더 높은 발 받침대를 주면서 모두가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함께 깨달아야 할 세 가지 큰 교훈이 있다.


1. 중심 기준: 공정은 인간 중심적이고 은혜는 하나님 중심적이다(27절)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드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첫 번째 교훈은 '공정'은 사람 중심적 곧 인본주의적이라면, '은혜'는 하나님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 예수께서 이 시점에 품꾼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촉매는 마태복음 19장 마지막 부분에 한 베드로의 질문이었다.
- 겉으로는 신앙심이 두터워 보였으나 재물을 팔아 나누어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부자 청년이 슬퍼하며 떠나는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하신다(마 19:23-24).
- 그런 와중에 베드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는?" "나는?" 자신은 배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헌신과 희생을 부자 청년보다 훨씬 더 많이 했는데, 자신의 처지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공정에 대한 생각이 싹트는 것은 자신에게 초점이 돌려지기 너무 좋은, 사탄이 유혹하는 통로가 된다. 내 삶 안에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하나님을 향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경계선을 넘는 것이다.
-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생활하기 때문에 공정을 논한다. 그리고 공정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 최근 여러 종류의 재난 지원금 중에 현 정부가 헛발질한 대표적인 정책은 전 국민 2만 원 통신비 지원이 아닐까 한다. 전 국민에게 2만 원의 통신비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가 결국은 국회에서 35세에서 64세에 이르는 국민은 제외하기로 한 합의는 결과적으로 자살골 같은 정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 연령층이 현재 국민 중에 가장 열심히 일하며 세금을 가장 많이 납부하고 있는데, 굳이 그 연령층만 제외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연령층은 당연히 공정하지 않은 처사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러분이 2만 원을 못 받는 것이 공정한 것인가, 공정하지 않은 것인가? 공정하지 않다. 그래서 절반 이상의 국민에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나는?"
- 우리가 "Unfair! Unfair!"라고 소리 지를 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반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적인 은혜를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못하는 경향성이 크다. 왜? 하나님의 은혜는 나 중심적인 이기심을 붙잡고 있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고 은혜 같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베드로는 왜 자신의 헌신과 희생에 집중했을까? 자기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일어난 일이다. 베드로는 종종 그런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예수님을 보지 않고 자신을 본다. 놀라운 고백 뒤에 자신은 결코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만만하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가시지 말라고 훈수를 둔다.
- 인간이 중심되고 내가 중심될 때, 은혜는 은혜롭지 못하게 느껴질 공산이 크다. 공정하지 못한 것이 은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은혜의 하나님은 공의롭고 정의로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중심적인 은혜의 가치를 붙잡는 것이 공의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 중심적인 은혜의 가치를 붙잡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당연히 너희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되고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될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2. 가치 부여: 공정은 상대적이고, 은혜는 절대적이다(9-12절)

- 예수님의 '포도원 품꾼' 비유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두 번째 교훈은 '공정'은 상대적이고, '은혜'는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 나중에 온 사람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일찍 온 우리를 그 사람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외치는 것이다.
- 베드로의 마음이나 품꾼의 마음이 같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 공정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생성되는 한시적인 가치다. 그러나 은혜는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히 필요한 가치다.
- 우리는 때로 상대적인 공정만을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적인 은혜를 주시길 원하신다.
- 사실 공정을 하나님께 강요하면 오히려 걱정거리가 생긴다. 정말 공정하게 대하시면 우린 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다. 은혜만이 살길이요 감사의 제목이다.
-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다른 상대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으로 덮을 수 없다.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더 행복한 인생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엄청난 자존감의 회복, 엄청난 감사의 넘침은 하나님을 공정한 하나님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하나님으로 보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3. 타인 관계: 공정은 경쟁적이고 은혜는 양보적이다(16절)

- 오늘 본문의 '포도원 품꾼' 비유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세 번째 교훈은 '공정'은 경쟁적이고 '은혜'는 양보적이라는 것이다.
-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16절)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의 신비함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주셨다.
- 품꾼 비유의 포도원 주인은 추수에 관심 갖기보다 품꾼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았다. 주인은 품꾼을 그냥 돈 주고 일 시켜서 적은 돈을 들여 포도를 많이 수확할 수 있는 사람으로 봤던 당시 시대 문화적 배경을 무너뜨렸다. 그 주인은 일을 잘하는 품꾼이나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려는 품꾼조차 자식처럼 대했던 것이다.
- 품꾼이 외친 불공정 문제는 주인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먼저 온 품꾼이 뒤늦게 온 품꾼을 가족처럼 형제로 보지 못한 데 있었다. 먼저 온 품꾼이 늦게 온 품꾼을 경쟁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 우리 크리스천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보다 뒤늦게, 우리보다 더 어렵게, 우리보다 더 우여곡절로 믿음이 부족한 가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과연 어떠해야 할까?
- 구원받은 우리가 아직 구원받지 못해 이제 구도자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 형제와 자매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그들을 경쟁 대상으로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받는 것에 경쟁심을 갖는 것은 잘못이다.
- 은혜는 양보적이고 공동체적이다. 은혜로 다른 이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을 탓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성숙이라고 믿는다. 진정한 믿음의 성숙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품꾼이 한 데나리온씩 받는 것을 기뻐해 주는 것이다.
- 그렇다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공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씀은 아니다. 우리는 공정 무역, 공정 사회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우리 공동체 안에 공정하지 않은 대우를 받는 많은 지체를 돌아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 눈은 내가 공정을 외칠 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때 진정한 공정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일어나는 줄 믿는 여러분과 제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설교요약/정리: 안재환 (원천침례교회 집사, 흥사단 부이사장)
▸영문자막 번역/정리: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
정두준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문서기)
Eli Lee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Deloitte 리스크자문본부)
▸영상편집: 강한빛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상편집팀장, 오롯영상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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