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예배 설교(2020. 10. 25) ❋

- 김요셉 원천침례교회(수원) 목사 -


"진정한 제자도⑷: 감사함으로"

(요한복음 11장 38-46절)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 오늘은 '감사함으로'란 제목으로 '진정한 제자도'에 대한 네 번째 가르침을 함께 나누려 한다.
-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41절) 하고 '감사'하셨다.
- 오늘 본문 중에 특히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란 41절 말씀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 내 필요가 채워지는 것이 감사의 근원일까? 진짜 감사, 곧 성경적인 감사는 무엇일까?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 저는 예수님이 하신 감사, 성경적인 감사가 우리 안에 이렇게 생성될뿐더러 우리 삶에서 지속적으로 감사하는 삶이 영위될 수 있는 비결이 오늘 본문의 41절 말씀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무엇을 감사하셨을까?


1. 기대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아도 감사

- 예수님의 감사 첫 번째는 '기대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아도 하는 감사'다.
- 오늘 본문의 문맥에 속한 요한복음 11장 앞부분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가 병들었는데, 두 자매는 예수님께 오빠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전갈을 보낸다. 평소 같으면 모르는 사람도 치유해 주시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가셨던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로 알려진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오히려 이틀간 더 유하다가 베다니로 내려가신다.
-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 삼남매 가정을 굉장히 아끼고 유난히 사랑하셨다. 삼남매가 함께 살고 있던 집은 예루살렘 인근의 베다니(Bethany)에 있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절기를 지내러 오실 때면 꼭 베다니에 머무셨으며 특히 나사로의 집에 묵으셨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전갈을 받으실 때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사나흘쯤 떨어진 곳에서 사역하고 계셨다.
-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 우리는 기대(Expectation)를 지참하며 사는 존재다. 갓난아기로 태어나거나 어린 아이일 때는 기대가 크거나 많지 않다. 모든 순간순간이 새로운 경험일 때는 생성되는 기대가 별로 없다. 그런데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경험하게 되고 관계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기대감을 키우고 생존 능력을 키운다.
-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모든 유형의 기대들을 하나씩 산산조각 깨뜨리신다.

⑴ 관계에서 오는 기대
- 첫 번째는 관계에서 오는 기대를 산산조각 내신다.
- 가까운 관계일수록 기대가 많아지고 높아진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께서 자신을 각별히 사랑하는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기대가 컸던 것이다.
- 두 자매는 오빠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예수님한테 사람을 보낸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은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의 병도 고쳐 주셨다.
- 오빠가 병들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이 되자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엄청나게 기대했다.
- 두 자매가 보낸 사람으로부터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계시던 곳에 이틀을 유하신다. 그토록 사랑하던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오히려 예수님은 지체하고 바로 떠나지 않으신다. 이틀 뒤에 떠나셔서 사나흘 걸리는 길을 가셨으니까 사실상 오륙일 후쯤 죽은 나사로를 찾아오신 것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만나자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절) 하고 말한다. 마리아도 예수님 앞에 엎드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32절) 하고 말한다.
-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라는 별명을 가진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듣고 지체하셨던 예수님을 향한 두 자매의 기대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모습이다.
- 예수님은 전갈을 받고 왜 이틀을 지체하셨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다.
- 예수님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주님의 관계가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며, 보편적인 기대로 생활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대만 부응하시는 하나님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한테 소개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⑵ 경험에서 오는 기대
- 두 번째는 경험에서 오는 기대를 산산조각 내신다.
– 요한복음 11장 앞부분에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다니로 가려고 할 때, 제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서 나오는 기대를 갖고 예수님과 상대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기대를 계속 흔들어 놓으신다.
-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 뒤 예수님이 "유대로 다시 가자"(7절) 하신다. 제자들이 "얼마 전에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유대인이 돌로 치려고 했는데, 또 거기로 가려 하십니까?"(8절) 하고 말한다.
- 예수님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그러나 내가 그를 깨우러 간다" 하고 말씀하시니까(11절), 제자들은 "그가 잠들었으면 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한다(12절).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것을 가리켜 말씀하셨는데(14절), 제자들은 그가 잠이 들어 쉰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13절).
- 결국 예수님이 베다니로 향해서 예루살렘 쪽으로 다시 내려가시려 하자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냉소적인 말을 한다.
-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전갈을 받고 고치러 가면 되고, 또 나사로가 죽었다고 해서 이제는 갈 이유도 없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볼 때 이런 상식과 경험을 모두 깨뜨리시는 것이다.

⑶ 관습에서 오는 기대
- 세 번째는 관습에서 오는 기대를 산산조각 내신다.
–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셨을 때 눈물을 흘리신다. 이때 무리의 반응이 갖가지로 나온다.
- 35절은 성경에서 제일 짧은 구절이다(Jesus wept).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절) 그러자 유대인이 "예수께서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눈물을 흘리시는지 보라"(36절)고 한다.
- 예수님은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 나사로가 죽은 것이 슬퍼서일까? 마리아가 울고 함께 온 유대인이 우는 것을 보시고(33절) 갑자기 눈물을 흘리신 것일까? 여기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무리는 관습적으로 그냥 슬퍼서 우시나 보다 생각한 것이다.
- 예수님은 무리가 가졌던 관습적인 기대, 또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졌던 관습적인 기대에도 부응하지 않으신다. 왜 그러셨을까?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 보편적인 기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과 관계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려면 그런 기대를 내려놓고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부활 소망을 가져야 한다.
- 기대(Expectation)를 소망(Hope)으로 바꾸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를 흔드신다.
- 하나님이 내가 기대하는 대로 하지 않으시면 그분에게도 실망하는 사람에겐 감사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기대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고 내 기대보다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 하기로 결심하는 사람에겐 불평이 감사로 바뀐다.
- 마르다와 마리아,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그 무덤 앞에 있던 유대인들의 기대치를 산산조각으로 깨뜨리시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는 정체성을 일깨우는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놀라우신 임재하심에 그들은 부활의 소망을 붙잡고 살 수 있었다.


2. 기분이 상하여 감정 억제가 어려워도 감사

- 예수님의 감사 두 번째는 '기분이 상하여 감정 억제가 어려워도 하는 감사'다.
- 오늘 본문 첫 구절(38절)에는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 그런데 그 몇 구절 앞에는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35절)고 기록하고 있다.
- 예수님의 눈물은 나사로가 죽어 슬퍼서 흘리신 눈물이 아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곧 부활할 것을 알고 계셨다. 마리아와 마르다, 그들과 함께한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감정에 동화되어 우신 것도 아니다.
- 나사로의 죽음과 그 죽음을 한없이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 주변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신 예수님이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에 빠지신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화나신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 예수님의 마음을 분노하게 하고 아프게 하는 곧 비통하게 하는 것의 중심은 '죄'에 있었다.
- 죄와 그 죗값의 결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음이 이르렀고 그 죽음 때문에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부활의 소망을 어렵게 만들어 놓고 있는 현상이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과 생명을 신뢰하며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가는 것이 견디기 어려우셨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거룩한 분노 곧 비통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 감사는 우리 감정의 시녀가 아니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감사할 수 있고 기분이 나쁘면 감사할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이 말하는 감사일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가지는 마음의 감사는 아니다.
- 감사는 부활이요 생명 되신 예수님의 정체성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의 몫이다.


3. 기도 들으심의 확신을 통해 회복되는 감사

- 예수님의 감사 세 번째는 '기도 들으심의 확신을 통해 회복되는 감사'다.
- 예수님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이 일어나기 전, 곧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다. 그 감사 기도는 예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즉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면서 깊은 탄식을 부활 소망으로 승화하시면서 나사로 곧 우리를 그 맏아들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시키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신 것이다.
-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기도하신다. 돌을 옮겨 무덤을 열었지만 아직 나사로는 나오지 않았다.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는 순간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41절)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42절a)
- 진짜 기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이요 감사다. 내 기도를 들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을수록 감사가 끊이지 않는다. 감사가 바뀌지 않는다. 감사가 상황에 따라서 좌지우지되거나 감정에 따라서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에 대한 확신이 예수님이 감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아닐까?
- 이것이 크리스천의 감사다. 누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해도, 심지어는 내 부모가 나를 버려도, 내 배우자나 자녀가 내 가슴에 못을 박아 깊은 상처를 입혀도 내가 감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기꺼이 내주신 그분이 지금도 나를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 우리 크리스천의 성경적인 감사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아들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에서 시작된다. 나의 기도만 들으시는 게 아니라 성령님이 내 입술을 대신해 내 깊숙한 마음에 있는 아픔도 하나님이 들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깊숙이 통찰하시고 누구보다도 나의 상황을 잘 아실 수 있도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설교요약/정리: 안재환 (원천침례교회 집사, 흥사단 부이사장)
▸영문자막 번역/정리: 노승빈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회장, 백석대 교수)
정두준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문서기)
Eli Lee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Deloitte 리스크자문본부)
▸영상편집: 강한빛 (크리스찬타임스 한국후원회 영상편집팀장, 오롯영상프로덕션 대표)


저작권자 © 크리스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