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외환위기 와중에 우리는 장롱속 금을 모았다 350만명·225t·21억달러 한국인은 그렇게 위대하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펴지는 성탄절이 지나 새해를 맞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단상(斷想)이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온 국민이 참여했던 '금(金) 모으기 운동'이다. 1998년 1월 5일부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범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필자는 KBS 보도국장을 맡고 있었다.

1997년 가을부터 우리나라는 심각한 외환위기를 맞더니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이른바 'IMF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었다. 국내 보유 달러가 부족하자 환율이 치솟아 달러당 700원에서 1600원을 넘었고 수많은 은행과 기업이 순식간에 파산하는 등 모든 경제활동이 멈춰서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부족한 달러를 시급히 확보해야만 외환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12월 24일 오후 열린 '밤 9시 뉴스' 편집회의에서 경제부장이 성탄절에 걸맞은 '굿 뉴스' 아이템이라며 이색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경제부장이 내놓은 제안은 집집마다 장롱 속에 있는 금반지나 금팔찌를 모아서 수출하면 국제 금시장에서 즉각 팔 수 있어 달러가 들어오게 되고 국내에서는 높은 환율 때문에 비싸게 팔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성탄절인 25일 밤 9시 뉴스에 '금 모아 수출해서 애국하자'는 제목의 리포트가 방송되자 곳곳에서 방송국으로 언제부터 팔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많은 시청자가 집에 보관 중인 돌 반지 등을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서 좋고, 한편으로는 나라 사랑도 할 수 있다는 애국심까지 발동시키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성탄절 뉴스를 계기로 KBS는 전국 곳곳에서 금을 사들이는 은행과 금 감정사, 그리고 모은 금을 수출하는 무역회사를 각각 선정하는 등 준비 과정을 거친 뒤 1월 5일부터 '금 모으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시작했다. 금 모으기 운동 첫날부터 전국 446개 은행 지점에 4만5000여 명이 모두 3314㎏의 금을 들고나왔고, 이틀 만에 10t 넘는 금을 금괴로 만들어 국제 금시장에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전국 곳곳에서 장롱 속 돌 반지 등을 들고 은행 창구에 몰려든 인파 모습이 해외 뉴스를 통해 알려지면서 한국인의 애국심과 단결력에 대한 세계적 찬사가 이어졌다.

1월 5일부터 31일까지 계획했던 '금 모으기 운동'은 국민적 관심과 호응이 너무 큰 나머지 2월 5일부터 21일까지 2차 금 모으기 운동으로 연장됐다. KBS에 이어 MBC, SBS에서도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결과 국민 350만여 명이 들고나온 225t 금을 수출해 21억달러 이상을 보유하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 최저 외화보유액 32억달러의 3분의 2에 달하는 달러를 추가로 확보하면서 아시아 국가 가운데 제일 먼저 'IMF 외환위기'를 넘기게 됐다. 세계가 놀란 '금 모으기 운동'과 관련한 숱한 화제 중 특히 이 운동에 참여하자고 보채던 암 투병 아들을 위해 이미 순금 반지를 팔아버린 어머니가 끝내 결혼반지를 들고나온 사연 등이 그해 겨울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나라를 다니고 그 나라 국민을 만나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국가 위기 앞에 평범한 국민이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온 사연은 물론 그 비슷한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우리는 국난에 특히 강한 민족이다. 가까이는 외환위기가 그랬고 좀 멀리는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이 그랬고 더 멀게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 의병 전통이 있다. 평범한 민족이라면 이렇게 거칠고 험한 이웃들 틈바구니에서 수천 년 이상 명맥을 이어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현대 한국인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하다. 우리 DNA에 새겨진 위기 극복 능력으로 지난해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라는 험난한 파도도 새해에는 슬기롭게 헤쳐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김인규 경기대학교 총장]

<매일경제>

저작권자 © 크리스찬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