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는 말

2018년 여름에 시작한 한국(조선) 선교사 열전을 이제 마치려한다. 연재를 시작할 즈음에 1884년 최초의 공식 선교사로 이땅을 밟은 알렌 선교사의 행적을 시작으로 1912년 인돈 선교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제 1차 한국(조선) 선교사들로(The First Generation of American Missionaries in Korea) 명명하였다.

연재를 하는 동안 오늘날 한국이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 제공은 저들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믿음과 열정의 결과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저들의 희생과 업적을 가벼이 하거나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10여 곳의 선교사들의 묘지나 그들이 다녔던 대학교와 생가를 방문할 때마다 주께서 주시는 감사와 감동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연재할 동안 많은 격려를 해 주신 동역자들과 독자들에게 또한 감사를 드린다. 1884년에서 1912년 동안 거의 100여명의 선교사들이 한국(조선)에서 헌신하였지만 자료의 미비로 인하여 다 소개하지 못함을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경상도 내륙지방과 강원도를 복음화 한 알리스 웰본(Alice Welbon) 선교사, 최초의 간호사로 와서 병자들의 간호이상으로 전도에 열중한 에니 엘러스 (Annie Ellers), YMCA 운동을 최초로 소개하고 한국 땅에 창설한 프랭크 브록크만(Frank Brockman), 천개의 목숨이 있다면 그 전부를 한국(조선)을 위해 드리겠다던 루비 켄드릭(Ruby Kendrick), 가진 것 전체를 가난한 자들과 나누고 본인은 영양실조로 쓸쓸히 죽어간 엘리자베스 쉐핑(서서평, Elisabeth Shepping) 선교사 등.

연재할 동안 몇몇의 독자가 질문해 온 것들 중 하나가 왜 침례교단에서의 선교사들이 상대적으로 적느냐는 것과 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침례교 선교사들이 적은 이유가 크게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나는 그 당시 이미 침례교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국에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한 상태이고, 또 다른 이유는 아무래도 회중교회이다보니 개교회 중심으로 한국(조선)에 집중적으로 파송하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침례교파는 한국전쟁이후에 본격적으로 한국선교에 나서게 되는데 이 역시 한국전쟁동안 한국을 방문했던 빌리 그래함(Billy Graham)목사의 영향이 크다고 볼수있다. 장로교와 감리교단은 당시 총회 선교부가 상대적으로 다른 교단보다는 훨씬 체계화되어 있었고, 한국(조선)을 선교 전략지로 채택한 것이 결정적 이유인 것이다.

혹시 약 50여 명의 제1차 한국(조선) 선교사들의 (The First Generation of American Missionaries in Korea) 정보들을 더 보고자 한다면 www.kosinusa.org로 들어가 목회자료실과 커뮤니티 란을 클릭하여 보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부족하지만 격려를 아끼지 아니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주께서 힘을 주시는 대로 2000년 기독교 역사중에서 주요한 사건들을 연재하려는 계획중에 있다. 이 또한 기도해주시길 바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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