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신앙은 언제부터 갖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저는 소위 모태신앙으로 아버님이 성결교회 목사님이셔서 자연스럽게 믿음생활을 하며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바치신다는 서원을 하셨고, 저도 그닥 거부감 없이 발아들여 신학교에 입학을 하긴 했는데 입학하고 보니 신학교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학교를 떠나보려고 애를 썼는데 잘 되지는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는지에 대한 생각도 진지하게 하면서 신앙적인 갈등을 많이 했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결국 다시 주저앉게 되었구요. 하지만 2학년, 3학년때까지도 그러한 고민은 계속되었습니다. 4학년이 되어서야 '이 길밖엔 없구나' 하는 생각에 비로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서울신학대학 신학과(B.A.)을 졸업하고 연합신학대학원에서 2년(Th.M.) 공부 후, 1982년도에 미국으로 가족 모두가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떠셨어요?


처음 메일랜드 주의 프레데릭이란 도시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했고, M.Div 를 공부할 때는 1년 반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진짜 '내일 뭘 먹고 살지?' 하는 생각은 해야할 만큼 어려운 상황도 경험해보았습니다. 나중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목사는 늘 교회 안에서만 있기 때문에 직접 세상과 맞닥뜨려 살고 있는 신자들의 심정을 모를 수 있다. 신자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복음 위에 살아가기 위해서 세상과 어떤 싸움을 해야되는지… 그런 싸움을 그들은 삶의 현장에서 매일 하고 있는데, 목사로서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이야기들을 참 많이 했습니다. 어려웠던 시기가 저에게는 힘들기도 했지만 감사했던 시간이기도 했어요.


1983년부터 86년까지는 애틀랜타의 콜럼비아 신학교에서 M.Div를 공부했는데 영어도 부족했고,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어요. 지금은 진보적으로 바뀌었는지 몰라도 당시에는 목회자 양성에 초점을 맞춰 가르쳤었고, 저 역시 저의 배경이 성결교인지라 진보적인 경향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들도 무척 복음적인 가르침이 많았구요. 이후 드류대학에서 구약학으로 Ph.D를 받았습니다. 91년도에 공부가 끝났을 때, 영주권도 포기하고 바로 한국으로 되돌아 갔어요. 1991년도부터 2021년 2월까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죽 하다가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총장으로 섬기셨던 서울신학대학교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서울신대는 1911년도에 OMS 선교사들이 오셔서 세운 학교입니다. OMS는 초교파 선교단체로 영향은 웨슬리언 신학에 서있는 분들이었구요. 일본에 정착했다가 한국에 들리셨는데 한국에서 더욱 부흥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성성서학원으로 이름이 붙여졌었죠. 학교는 5층 건물로 세워졌는데 당시에는 5층을 세울만한 기술력이 없어서 벽돌 한 장까지 중국에서 수입해서 세웠다고 해요. 이 학교가 기초가 되어서 기독교 대한성결교회의 목사님들이 배출되었고, 교단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죠.

이렇게 학교는 올 해로 110년이나 된 유서깊은 학교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타 신학대학에 비해 일반학과가 많고, 이들을 기독교 신앙 안에서 교육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총장으로 섬기실 때 생각나는 일들이나,업적(?)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기회가 주어지진 않았지만 늘 마음에 목회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결국 해보진 못하고 퇴임을 했지만요.
총장으로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임기를 마쳤는데 한국의 대학교 사정이 어려운 시기여서 모금하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은 대학 총장들이 제일 먼저 해야할 일 중의 하나가 모금 마련이랍니다.

총장으로 섬기는 동안 감사했던 것은 우리 대학의 정신이 뭔지에 대한 문제들을 많이 다뤘구요, 학교의 사명 선언문(서울신학대학교는 그리스도 중심의 학문적 신앙공동체로서 웨슬리안 복음주의 성결운동의 전통에 따라 탁월한 지식과 깊은 영성을 추구하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지닌 사역자와 전문인을 양성하여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글로벌 인재를 배출하는 사명을 갖는다.)이나 대학의 헌장 등을 재정비 했습니다. 특히 신대원에 미국 신학교들은 다 가지고 있는 클래스인데 한국에서는 안된 클래스가 있어요. Supervised Ministry Course라는 보통 SM 코스라고 불리는 클래스인데 그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학생들이 교회에 가서 단순히 교육전도사로서 봉사하고, 실습하는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교회 안에서 목사님이 수퍼바이저가 되어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입니다. 쉽진 않았지만 이 과목을 실현 시킨 이유가 교회 현장에 계시는 목사님들이 하는 말씀이 “신학생들을 데려와보니 졸업하고 와도 아는 것이 없다. 그저 이론적인 신학을 배워왔다. 학교가 실천신학에 대한 과목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제가 생각했던 것은 신학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실천신학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구요. 왜 교회 안에서 신론을, 구원론, 교회론을 이야기 해야하는지 … 이런 입장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즉 교회에 필요한 과목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목회자들이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과목에 대한 커리큐럼도 많이 변경을 했습니다.

요즘 한국 신학교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한국 신학교가 좀 위기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선 학생들이 오지 않아요. 옛날에 비해서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지원하는 학생 숫자가 엄청나게 줄었어요. 2년 여 전부터 미달 사태가 생기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신학교들이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 있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생각하시는 해결책도 말씀해주세요.


좀 복잡한 면이 있는데…. 먼저 사회적인 측면으로 저출산 문제가 생기면서 교회 안의 유년주일학교부터 청년층이 줄어 들었고요, 이 아이들이 커가면서 은혜받고 신학교로 와야 하는데 말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교회에 대한 실망이 있어서 교회를 떠난 청년들이 있지요. 교회 안의 문제들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자 이런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을 겁니다. 저출산의 문제와 교회의 책임도 있다고 봅니다. 어찌보면 한국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출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회도 가르쳐야 하고, 또한 교회도 성윤리에 대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봐요.

이제 남은 시간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귀중하시리라 보는데 가지고 계신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교단의 선교사이셨던 유지화 목사님이 아마존의 마나우스에 세우시고, 현재 애틀랜타 섬기는교회(안선홍 목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신학교가 있습니다. 재작년 안 목사님이 아마존 지역의 신학교를 같이 운영해보자고 하신 요청에 응답하여 이번에도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옛날에 목회자를 양성하던 순수한 신학교를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신학교의 모양을 갖춰가게 될지 …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존 성결신학교'로 명명된 이 학교의 필요에 따라서는 직접 가서 강의도 하고, 행정도 도와드리고, 학교의 흐름을 잡아 주는 일을 맡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마존 성결신학교의 교장이 저의 공식직함이 되었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울신학대 <사명선언문>

서울신학대학교는 그리스도 중심의 학문적 신앙공동체로서 웨슬리안 복음주의 성결운동의 전통에 따라 탁월한 지식과 깊은 영성을 추구하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지닌 사역자와 전문인을 양성하여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글로벌 인재를 배출하는 사명을 갖는다.

대담 이윤태 발행인·정리 한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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