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와지르 아크바르 칸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 아프칸 패망 분석

뉴욕타임지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Friedman)은 17일자 오피니언에서 바이든의 철수를 지지하면서 아프간 패망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분석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우리는 미국 당국자들이 아프칸 군대가 자국 정부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그 곳에 있다.”라는 말이 가장 거슬렸다고 하면서, 부언하기를
“그들은 영국, 소련, 미국과 오랫동안 싸운 경험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태평양 섬의 어민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과 같다” 고 하였다. 그들은 싸울 줄 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싸울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탈레반들은 “처음부터 초강대국이 훈련하지 않은 소규모지만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아프간 민족주의 신앙과 외국인으로부터의 독립하겠다는 정신과 더불어 종교, 문화, 법률 및 정치의 기초가 되는 근본주의 이슬람의 보전을 위해 싸우고 있다” 고 하였다. 왜냐하면, 탈레반은 스스로가 정통 이슬람이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2. 탈레반이 정통 이슬람이다.

위 글에서 중요한 대목은 탈레반은 “종교, 문화, 법률 및 정치의 기초가 되는 근본주의 이슬람”이라는 문장이다. 탈레반은 자신들을 근본주의 이슬람 즉, 쉬운 표현으로 하면 “진짜 이슬람”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근본주의 기독교라는 표현은 우리 안에서도 부정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보수주의 교단은 메이첸 박사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 신앙과 신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 근본주의 기독교가 우리의 신앙이요 신학이다.

탈레반은 빈 라덴의 알 카에다의 이념적 산물이다. 탈레반은 아프간 점령이 목적이었지만, 빈 라덴의 알 카에다와 무장테러단체 ISIS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전세계를 향해 테러를 자행했다. 당시 무슬림들은 알카에다와 ISIS를 향해 진짜 이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을 강력하게 응징하지 못했다. 또한 서방의 정치가나 중립적 학자들이 이슬람을 향해 테러 종교가 아니라고 변호하지만 이것은 코란에 근거하지 않은 동정론일 뿐이다.

3. 이슬람, 칼과 정복의 종교

처음부터 이슬람은 칼과 정복의 종교였다. 탈레반은 칼 대신 총을 들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슬람을 "칼이냐 코란이냐”는 말로 비유하기도 했었다.

이슬람이 나라를 정복할 때 양자택일을 강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 무슬림들은 이 말은 서양 기독교가 만든 말이라고 하면서 교과서에서 삭제하도록 로비를 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이 칼의 종교라는 것은 코란 스스로 말한다:


코란 2:190-192, “너를 대적하는 자는 신을 위하여 싸우고 그들을 죽이라”(2:193, 194: 2: 216, 9:5등).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Muhammad)는 칼로서 27회 전쟁을 통해 사우디를 통일하였고, 동방 정교회의 본산지인 비잔틴 제국의 황제를 향하여 항복하라고 위협하였다. 그의 말은 1453년 오스만 투르크가 비잔틴을 정복함으로 성취된 셈이다.

무함마드 사후 3대 칼리프는 기독교 국가인 시리아, 이스라엘 등 아랍을 정복하였고, 구라파까지 침공하였지만 프랑크 왕국의 샤르망 대제에 의하여 퇴각하고 스페인과 아프리카로 진격하여 북아프리카를 이슬람화하였다.

중앙아시아에서는 고려 출신 고선지 장군의 당나라군이 이슬람에게 패배함으로 중앙아시아가 이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국제공산주의와 이슬람의 공통점은 세계정복이다.
그 예로 9.11 테러 이후 빈 라덴은 미국을 향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미국을 테러하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

4. 아프간의 미군 철수에 대해 사람들이 비난하지만, 미국이 아무리 잘해도 반미주의자들은 비난을 택하지 칭찬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반미도 일종의 무서운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이다.

20년 동안의 미국의 투자는 군대 용어로 “도루묵” 인것 같지만, 여론이 간과하는 것은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또 중동 문제에 개입함으로 2010년대부터 이슬람 테러가 아랍과 아프리카로 무대를 서서히 옮겨 지금은 아프리카로 건너가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미국과 서방의 강력한 대처가 아니었더라면 우리 한국도 이슬람의 테러에 위험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도 미국 CIA로 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이슬람 테러를 예방할수 있었다.

이슬람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독교를 무서운 이념적 적대세력으로 간주한다.
2007년 아프간 사태를 부득이 언급하자면, 당시 탈레반이 한국 신자들을 납치했을 때 영국 The Economist지는 탈레반이 한국 크리스찬들을 납치한 것은 “한국이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독교로 급성장한 나라이기 때문에 타킷이 되었다.” 고 하였다.

이슬람 근본주의(원리주의)는 공산주의보다 더 무서운 종교적 전체주의(Religious Collectivism)이다.
그럼에도 2차 대전 이후 비서구 국가들은 서구 식민지에 대한 반감으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 손을 잡았다.

경제적으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아랍국가들이 친소, 반미, 반서구의 기치를 들고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Marx-Muhammad Compact(마르크스 무함마드 협력) 라고 한다.

어떤 비서구권 국가들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영향을 받아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전의 역사를 식민지 사관으로 거부하고 역사 교육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독교의 장점을 접할 기회를 차단하고 오직 자기 종교만 대학교까지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캄보디아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역사 무지에 대해 무척 놀랐는데 링컨, 징키스칸 조차도 배우지 않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5. 아프간 국민들의 모순 : 이슬람은 절대 포기 못하지만 탈레반이 두려워 탈출한다.
어느 외국단체가 아프간 국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85% 이상의 사람들이 샤리아법을 모든 국민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이것은 이슬람을 절대종교로 고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정작 진짜 이슬람을 실천하는 탈레반을 두려워하여 미 군용 비행기에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은 이들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영적 무지를 노출한 것이라 할수 있다. 갈라디아서 4장 8절의 NIV 영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Formerly, when you did not know God, you were slaves to those who by nature are not gods.” 직역하면 “이전에 너희들은 하나님을 몰랐을 때 본질상 신들이 아닌 자들에게 노예였다”는 뜻이다.
아프간인들은 그들 스스로 이슬람의 노예가 되는 것을 선택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정통 이슬람을 자처하는 탈레반으로 부터의 다스림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6. 아프간의 엑소더스는 선교의 기회이다.
수 백만 아프간인들의 엑소더스는 선교의 기회이다. 이들은 카불을 떠나면서도 이슬람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택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카불도 이슬람도 떠난다. 구라파로 탈출한 이라크와 시리아 난민들, 그리고 이스탄불의 한 호텔에서 예배 모임을 하는 이란인 크리스찬들이 이것을 증명한다. 자기 나라에서 이러한 기독교 집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1960년대, 시아누크 왕은 기독교를 엄청나게 박해했다. 그래서 당시 캄보디아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1970년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사태로 태국 난민촌으로 피난 온 난민들이 거기서 신자가 되어 지금 캄보디아 교회 지도자들로 활약하고 있다. 미국에는 비록 소수지만 캄보디아인들의 교회가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물론 그들은 피난 간 나라에서도 자기들의 문화와 종교를 버리지 않고 구라파의 혜택을 누리지만 도리어 구라파를 이슬람화 하려고 한다. 이들이 이슬람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데도 이슬람을 포기 못하는 이유는 자기 나라 지도자들이 진짜 이슬람을 실천하지 않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부하기를 진짜 이슬람은 기독교보다 더 위대한 나라를 만들수 있다고 한다.

무슬림 지식인들은 여전히 과거 이슬람 황금시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 지식인과 중산층들은 부정부패와 독재에도 불구하고 자기 종교와 문화의 수호자 노릇을 한다.

한국의 지식인들도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이러한 아집들이 선교의 큰 장애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에는 남은 자들이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내다보았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두발과 야완과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나라에 전파하리라”(이사야 66:19).

본문에서 중요한 부분은 '도피한 자'들이다. 영어 성경은 도망한 자, 탈출한 자, 남은 자로 번역되고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유대와 이방 나라 중 자기 종교와 문화를 떠나 하나님께로 개종한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이 먼 나라로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복음선포라는 용어는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이방인에 의한 이방인 선교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에는 미국이나 호주로 피난가서 거기서 신자가 되고 목사가 되어 자기 나라로 돌아와 봉사하는 자들이 많다.

7. 무슬림 디아스포라 전략은?
아프간 난민들이 갈수 있는 최상의 나라는 동남쪽의 파키스탄이고, 다음은 이란을 경유해 터키까지 갈수 있다고 본다. 일부는 북쪽의 우즈벡쪽으로 갈 것으로도 예상한다. 우리 선교사들은 첫째로 현지 교회와 협력하여 난민선교를 할수 있다. 파키스탄에는 장로교회가 강하고 위의 나라들에는 작지만 교회들이 있다. 한국 선교사들은 먼저 이들 현지 교회와 잘 협력해야 한다.

요르단의 예를 들면, 아랍무슬림 난민선교도 현지 교회와 협력 하에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외국인인 선교사의 신변과 법적인 보호를 받기 위하여는 현지교회 지도자들이 도움이 필요하다.

둘째는, 이미 많은 NGO단체가 있음으로 이들과 협력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복음과 빵이 병행해야 한다. 이들은 춥고 배고프다. 같은 무슬림이라고 현지인들의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랍의 봄' 사태 이후 많은 아랍 무슬림들이 기독교를 미워하면서도 구라파로 갔다. 왜냐하면 아랍 국가들의 원조는 매우 미미하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인도차이나가 공산화되면서 태국 난민촌은 많은 기독교 선교단체들이 구조의 손길을 뻗어 전도와 봉사와 선교활동을 병행하였다. 소위 통합적 선교전략은 1974년 로잔대회 영향도 컸지만, 인도차이나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요르단에서도 이라크 난민사역을 위해 일부 한국선교단체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넷째, 개인 전도의 기회이다.
많은 난민들이 유엔이 제공하는 난민촌을 떠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난민촌은 춥고 화장실도 취사장도 다 열악하다. 돈 있는 난민들은 시내에 방을 얻기하고 친척들과 집단 거주를 하기도 한다. 그런 곳에 선교사들이 간식과 전도지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있다. 신자가 된 난민이 머물던 방이 교회가 되기도 한다. 로마시대 초대교회 교인들도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다(롬16:5).

마지막으로, 아프간은 20년 동안 한국교회와 서구 교회, 특히 미국교회와 단체들이 많은 투자를 하여 기독교 신자 수가 많게는 8,000명 혹은 18,000명까지 추산한다. 이들은 전도의 좋은 매개체가 된다. 이들에게 일자리도 만들어주고,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며서 이들이 전도의 파트너가 될수 있다. 피난지가 가장 좋은 선교의 장이 될수 있는 것이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파키스탄은 탈레반 양성소라는 사실이다. 대부분 탈레반은 가난한 청소년들로 이슬람 학교인 마다라사 출신들로 코란과 칼을 옆에 놓고 공부한 자들이다. 이 탈레반들을 키우는 것이 파키스탄 정부이다. 왜냐하면 이 탈레반 학생들이 대 인도전쟁에서 가장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가 되기때문이다. 파키스탄은 음지에서 이들을 양성하고 있다. 자칫하면 난민 사역 중 탈레반의 테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2021. 08. 19
전호진 박사 (전 고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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