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툴리안

이 변증론자는 2세기에 가장 신학적인 사고를 하였던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는 헬라어보다는 처음으로 라틴어로 글을 썼으며 그랬기 때문에 라틴계의 신학이나 서방의 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앞으로 보게되겠지만 그는 또한 수 세기 후에 다가올 위대한 삼위일체 회의와 교리를 예상하고 준비하였다.


터툴리안은 2세기 중엽(AD 150-160)에 북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거주하는 로마인 가정에 태어났다. 그는 법률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였고 성년이 되어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크리스찬이 된 직후 그는 외부에서 기독교를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변호하고 교회안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데 자신의 예리한 법률가로서의 재질을 활용하였다. 그는 구약과 신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과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신앙, 임박한 세계 종말에 근거한 극단적이면서 금욕적인 도덕에 몰두하였으나 결국 가서 그것들을 넘어서 지금도 계속되는 신의 계시를 믿는 특성을 가진 몬타니즘(창립자 Montanus의 이름을 딴)으로 알려진 기독교 종파를 받아들였다. 이 종파는 끝내 정통 교회에 의해 비판을 받았는데 터툴리안은 정통 교회를 향해 이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나타내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가 죽은 때(주후 220-225년경)와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나이가 많아 자연사 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순교자로 생을 마쳤다는 주장도 있다. 그는 “우리가 (박해자들에 의해) 더많이 죽임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 많은 숫자로 우리는 불어날 것이다. 크리스찬들의 피는 씨앗이다” (변증록(Apology, 50)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터툴리안의 문체나 수식어들은 법률 문서와 같은 정확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재치와 조롱과 빈정댐, 논쟁과 격렬한 흑백논리 그리고 단호함이 들어 있다. 그는 결코 “흐리멍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코 사과한 적이 없는 변증론자였다.” 터툴리안은 매우 똑똑하였지만 성경에서 지적한대로 (디모데후서 2:24-25, 디도서 3:2, 베드로전서 3:15)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데에는 조금 인색하였던듯 하다.

그는 광범위한 주제들에 대하여 30여권 이상의 많은 저서들을 집필한 놀라운 다적(多作)의 집필가였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주제의 하나는 크리스찬의 도덕성과 기대치 이하의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 크리스찬들을 어떻게 다룰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회개에 관하여(On Repentance)'란 책의 주제로 그가 충실한 정통 교회의 신도일 때 쓴 것이다. 사실 그는 그의 민감한 도덕성때문에 몬타니즘에 매료되었다. 그는 몬타니즘에 귀의한 다음에 “겸손(modesty)에 관하여”란 책을 집필하였다. 그리고 실제적인 크리스찬들의 문제인 기도, 세례, 금식 그리고 여인들의 복장 등에 관한 책들도 여러권 썼다.

변증론자로서 그는 기독교를 변호하는 데에는 져스틴이나 이레니우스와 같은 노선을 따랐다. 그러나 지적(知的)으로는 그들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한편 터툴리안은 져스틴에 맞서서는 냉혹하리만큼 크리스찬들이 철학을 이용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이교에 대한 처방(Prescription Against Heretics)'에서 그는 유명한 질문을 던졌다.

“아덴이 예루살렘에서 관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카데미와 교회 간에 무슨 일치점이 있는가? 이교도들과 크리스찬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그는 심지어 철학은 항상 이단으로 인도한다고 시사하였다. 그의 '처방'은 성경을 이해하거나 하나님에 관해 이해하는 수단으로 철학을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피하라는 것이다. 이레니우스와 마찬가지로 터툴리안은 그의 '이단에 대한 처방' '헬모게네스(Hermogenes)에 반대하여' 그리고 “발렌티누스 추종자들 (Valentinianss)에 반대하여' 등에서 일반적으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공격하였으며 특별히 영지주의를 공박하였다.

터툴리안의 가장 오래된 저서는 '마르시온(Marticon)에 반대하여'라는 5권으로 된 책이다. 여기에서 터툴리안의 비난의 대상인 마르시온은 2세기에 아주 영향력이 컷던 교사로 그가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인물이다. 예를 들면 마르시온은 “구약의 하나님은 화를 잘내고 복수를 하시며 유대인 만을 편애하고 예배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그러나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이 많고 은혜로우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요, 예배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구별하였다. 그는 구약성경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신약성경 가운데도 유대인들의 색채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되는 예를 들면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히브리서 같은 것들은 거부하였다. 그는 대부분의 누가복음서를 받아들이고 바울의 대부분의 서한을 받아들이되 그의 목회서신(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들은 제외하였다.

터툴리안의 가장 큰 공헌은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것으로 그 내용의 대부분이 '프랙시아스 (Praxeas)에 반대하여'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프랙시아스의 관심은 2신론(아버지와 아들은 2개의 신이다)이나 3신론(성령은 제3의 신이다)에 반대하여 유일신론을 옹호하려는 것이었다. 단일신론(monarchianisms)은 이러한 관심에서 나온 것으로 그것은 '유일한 통치'는, 모든 것을 통치하는데는 궁극적으로 둘이나 셋이 아니라 오직 유일한 통치자가 있을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프랙시아스는 한 분인 진정한 하나님은 세개의 다른 역할이나 방식, 즉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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