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5일 개최된 심포지엄에서 허교수는 “서회의 가장 큰 업적은 천대받던 한글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쉬운 한글책으로 번역출판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대한기독교서회가 지난 10월5일 오후3시 서울 구세군 정동 1928아트센터에서 <한국과 조선예수교서회 간행물>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가졌다. 이는 지난해 창립 130주년을 맞아 계획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하지 못했던 심포지엄으로서 허영진 교수(연세대 명예교수)가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의 교양 문학도서'를, 안예리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가 '근대 한국어와 게일의 한영자전'을, 서신혜교수(한양대)가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의 여성아동도서'를, 여인석교수(연세대)가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의 보건의학도서'를 각각 발표했다.


이날 첫 발표를 한 허영진교수는 “한글은 1894년 갑오개혁때 우리나라 공용어가 되었기에 조선성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가 설립된 1890년은 공식적으로 한자시대였으나 기독교서회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 한글을 선택하여 기독교를 자료로 한 정기간행물을 발간하였다. 당시의 정치적 변화와 사회질서의 동요는 한국인들을 교회로 쏠리게 했고, 읽을거리가 없었던 사람들은 기독교 간행물둘울 많이 읽었다. 선교사들이 선교에 적합하다고 감탄한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한글이 배우기 쉽고 읽기 쉬운 것을 알게 된 게일은 너무 감격하여, '한글이 기독교 선교를 위해 400년이나 기다려왔다'고 까지 극찬하였다.”고 회고했다.


이어서 허교수는 “당시 선교사들은 문맹률이 높은 중국이나 인도와 달리, 한국은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던 여성이나 일반인들도 한글을 집에서 배울 수 있고, 그들이 책을 좋아하여 성서나 기독교 서적을 받으면 열심히 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한지 불과 5년 만인 1890년에 조선성교서회를 조직한 이유는 한글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전도서를 만들어 팔 수 있고 선교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고 선교사들은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함께 번역을 시작했다. 번역을 도와주던 한국인들은 공동번역자가 되었고 곧 단독번역자가 되어갔다. ”고 발전과정을 소개했다.


또한 허교수는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당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단연 찬송가였다. 문학과 음악이 합쳐진 서적인 찬송가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의 압제로 한글찬송가를 출간하지 못하고 일본어찬송가가 나오게 되었다. 초기에는 곡조가 없는 찬송가가 대부분이었다. “ 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130년동안 기독교서회 역사를 돌아보며 허교수는 “서회의 가장 큰 업적은 천대받던 한글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쉬운 한글책으로 번역출판한 것이다. 선교사들이 예견한 것처럼 한글전도서는 누구에게나 읽혀졌고 기독교인구도 늘어가고 부흥했다. 이는 독자의 세대가 교체되면서 일어날 앞으로의 변화를 읽었기 때문”이라면서 “당시 기독교서회는 찬송가, 전도서, 어린이 독서물은 한글전용으로 편집하여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하고, 강의교재는 국한문혼용으로 편집하여 제한된 지면에 많은 정보를 전달하게 조력했다. 이것이 기독교서회가 성공하고 발전한 이유” 라고 평가했다. <최국희 기자>


곡조없는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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