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장애자 데미우르고스
악의적인 신으로써 데미우르고스는 불완전한 물질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고통을 초래하였으며 유대교의 창조주 여호와나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나 영지주의 지고의 신의 한 단계 하위인 누스(Nous)와 같은 그런 신이 아니었다.
부정적인 물질계의 창조자 데미우르고스는 상위의 신들에게는 영혼을 타락시키는 영혼의 장애자였기에 신들의 세계에서 소외 대상이었다. 그러자 데미우르고스는 아르콘(Archon: 지배자, 주인, 主)이라 불리는 일군의 동료 지배자들을 창조하여 이들로 하여금 물질계를 주재하게 하며 때로는 물질계에서 상위 세계로 올라가려는 영혼을 가로막는 장애자가 되게 했다.

▲ 물질은 영혼의 장애물
영지주의자들은 물질계는 결함이 있거나 오류의 산물이지만 그러나 물질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는 선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더 높은 수준의 실재 (영지주의의 영)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보았다. 이 세상의 열등함은 그림이나 조각 또는 수공예로 어떤 실재 대상을 표현할 때 그것은 모방이기 때문에 실재에 비해 열등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이같은 물질계에 대한 부정적 생각 때문에 금욕주의적인 경향으로 흘렀다. 또 일부는 세상 물질과 인간의 육체는 의도적으로 인간을 옥죄는 감옥과 같이 악한 것으로 인식하여 극단적인 금욕주의로 발전하기도 했다.

▲ 인간의 현 상태에 대한 신화적, 시적 묘사
영지주의자들의 이러한 생각은 신격이 물질계로 내려와 특정한 인간의 육체에 기거한다는 신화적이고 우주적인 드라마로 설명될 수 있다. 영지주의자들의 생각에는 인간 내면에 내재된 신격은 구원에 이르는 각성의 과정을 거쳐 상위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게 한다. 따라서 개인의 구원이란 개인에 내재하는 신성의 복원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영지주의 운동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이 같은 개인의 구원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지주의의 이 같은 특징은 시리아와 이집트의 영지주의 운동에만 한정된다. 왜냐하면 마니교와 만다야교 등 페르시아 지역에서 있었던 영지주의 운동은 이와는 달리 그들만의 고유한 종교 양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실 영지주의 운동이라는 용어는 시리아와 이집트의 영지주의 운동 만을 일컬으며 페르시아 지역의 영지주의 운동은 마니교라고 칭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영지주의 운동이 호감을 주었던 것은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 어떤 종교적 계율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다른 종교들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독특한 개인적인 신앙의 형태라 해도 다 용납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독립적인 개인 신앙과 뛰어난 지식을 추구한다는 영지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념은 기독교를 불완전하게 받아들인 많은 사람들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 예로 발렌티누스주의 신봉자들은 어떤 종교의 교리를 진리라고 믿고 받아 들인다는 것은 지적으로 이해하거나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지주의자들은 다양한 시대에 걸쳐 활동하였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원했던 것으로 보이며 4세기까지는 초기 기독교인들과 공존하였다. 영지주의자들에게는 규정된 집회나 조직 형태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종교나 새로 생겨나는 종교와 쉽게 하나가 되었다. 영지주의의 이런 특징에 대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하드리아누스 재위 기간에 이단적인 교리 창시자들이 나타났고 이들은 안토니누스 피우스 때까지 남아 있었다.”라고 말했다. 타 종교와 쉽게 동화되고 섞이는 영지주의가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을 가리킨 말이다.

1세기 후반부터 2세기까지의 영지주의의 주된 교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는 우리가 당시의 정통 기독교와 영지주의 운동과의 관계를 자세히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영지주의 운동에 대해 부분적으로 밖에 알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전에 영지주의에 대해 알려진 지식의 대부분은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요약문과 논설에 남아있는 자료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45년 영지주의 운동에 대한 중요한 문서자료인 '나그 함마디 문서'가 발견되면서 우리는 특히 초기 영지주의 운동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2세기 말 당대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였던 이레네이우스는 자신의 논문 '이단 교리에 대한 반박'에서 “영지주의 운동이 모든 도덕률을 개인의 변덕에 맡기고 있으며 어떤 고정된 형태의 신앙 규칙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또 2세기의 교부들 중 하나이며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주요 인물이었던 클레멘트는 자신의 저서 '스트로마타'를 통해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의 추종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 이유는 영지주의 자들이 세례의 유효성을 부정함으로써 이 성스러운 예식에 약속 된 하나님의 은혜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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