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애틀랜타는 어떻게 방문하게 되셨나요?


이번에 한국 각 교단의 선교부 대표들이 북미주 교단들의 선교단체들을 탐방하는 일정으로 미주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이분들의 탐방 목적은 한인 선교사들이 교단과 선교단체를 통해 2만5천 명, 개교회에서 비공식적으로 파송하신 분들 5천 명까지 총 3만명 정도가 있는데 10년 안에 은퇴하실 분들이 10퍼센트씩 매년 한국으로 돌아오시게 됩니다. 3천명씩 한꺼번에 들어오시게 된다는 이야기죠.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을 열심히 파송만 했지, 멤버 케어나 은퇴플랜은 없는 상황에서 열정만 가지고 보냈던 것이죠. 사실 유럽이나 미국도 초창기에는 다 그랬지요. 선교지에서 뼈를 묻으라고. 그런데 이제 세상이 그렇지 않고, 은퇴를 하시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서… 한국 교단은 아직 모르지만 먼저 그러한 상황에 맞닥뜨려 본 미국교단의 선교단체들은 선교사들에 대한 은퇴 플랜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그것을 보고, 공부하려는 탐사 여행이었어요. 그일에 제가 로드 메니져의 역할을 맡아서 방문하게 된 겁니다.

 

목사님은 현재 국제기아대책 미주한인본부의 사무총장으로도 섬기고 계신데 모르시는 독자들을 위해 사역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국제기아대책기구는 1971년도 닥터 레리 워드에 의해 시작되었어요. 이 기구는 '전 세계의 영적 굶주림과 육체적 굶주림이 공존한 지역에서 빵과 복음을 통해서 두 개의 굶주림을 종식시킨다'는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기아 대책'이라고 하면 NGO 같은 이름이지만 기구의 명칭에 들어있는 'Food For The Hungry' 에서 'hungry'는 physical hungry와 spiritual hungry 를 일컫는 말이고, 그들에게 'Bread and Gospel'을 가지고 간다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비슷하게 생각하는 월드비젼이나 컴패션이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위해서 시작했다면, 국제기아대책기구는 전문인 선교사를 보내서 그 지역의 지역사회를 개발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삼는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의 전략은 'Child Focused Community Transformation' 이라고 부릅니다. 가난한 나라나 전쟁 가운데 있는 나라들의 가장 취약한 계층은 아이들하고 여성이예요. 그래서 가장 취약한 계층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되는 여성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사역하는 것이 전략인 것이죠. 그 일이 1971년도에 방글라데시를 타겟으로 시작이 되어 지금까지 계속되어져 왔고, 한국에는 1989년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이 사역을 전하면서 CCC 리더십들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주 한인본부는 2002년도에 이원상 목사님(워싱톤중앙장로교회, 현재는 작고하셨음)이 이 비전을 가지고 씨드 머니를 만든 다음에 선교적인 NGO 사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분이 설립 이사장을 하셨고, 지금은 리치몬드 주예수교회를 섬기셨던 배현찬 목사님이 이사장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저는 2002년도에 한인본부가 시작이 될 때부터 같이해 북미주 전체 한인교회들과 협력을 맺고 있습니다.

 

지금 몇개국의 나라에서 사역하고 있나요?


국제본부 전체로는 절대 빈곤국가로 분류된 70개국에 5천여 명의 사역자들이 나가있고, 그들의 90퍼센트는 훈련된 현지인들이 사역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지요?


이름을 두 가지로 쓰는데 후원금을 모금하는 파트를 National Organization(NO)라고 부르는데 20여 개국의 선진국들이 맡고 있어요. 여기서 전문인 선교사도 발굴하는데 발굴한 선교사를 국제본부로 보내면 국제 본부는 이들을 선교현장으로 보냅니다. 전문인 선교사가 사역하는 Field Office(FO)들이 70여 개국에 있습니다. 선교사의 비자로 갈 수 없는 곳이 1차적 타겟이구요. 주로 힌두, 공산권, 이슬람권에 사역지가 많지요. 그 지역은 기본적으로 빈곤 아동들이 많아서 학교, 고아원 등 그 나라 커뮤니티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수혜국들은 어느 나라들이죠?
케냐, 에디오피아, 우간다, 부룬디,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아이티 등이 있고, 프로젝트가 끝나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저희 프로젝트는 마을에 들어가기 전, 마을과 일종의 협약을 합니다. 그래서 리더들을 교육시키고, 신앙공동체나 학교가 세워지고, 직업훈련을 통해 자립기반이 형성되고, 보건의료 센터가 세워져서 적어도 그 마을이 다른 마을을 도울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저희가 'Graduation(졸업)' 이라고 해서 마을에서 나옵니다. 저희가 마을에 들어가면 대략 10년 정도 사역을 하는데 자립이 가능하다고 여겨질 때 나오는 것이죠.

 

목사님은 이 기구에는 어떻게 조인하게 되셨어요?


저는 신학교(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이 있었어요. 이사야 61장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예수님의 비전 선언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당시 제 눈에 들어온 가난한 사람은 장애인들이었어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때문에 화전민 촌에서 4년간 사역도 해보았고, 노동자로도 지내보았습니다.
이후, 미국 유학을 마치고 이원상 목사님을 만나 이 기구에 들어올지 인터뷰를 하게 되었어요. 인터뷰에서 그러시더군요. “지금부터 일을 해서 은퇴 때까지 할 각오가 있으면 들어오고, 영주권이나 받고 그만둘 거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려는 그 짧은 순간 '신학교에는 내가 왜 갔는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내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하나님이 나를 신학교로 불렀을 때만이 아니라 또 한번 소명의 부르심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 때의 인터뷰는 그냥 직장을 위한 면접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콜링처럼 들렸어요. 잠깐 머뭇거리다가 “Yes”라고 했죠.

 

그러자 이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우리가 이제 막 시작을 해서 모금하는 것이 미미하다. 적지만 이것을 가지고 제3세계의 아이들을 위해 쓰려고 모금하는 것이지, 정목사 월급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세요. 그러시면서 버지니아주 4인 가족의 최저 생계비의 절반을 주겠다고 하세요. 그래도 하겠냐고 하세요. 이미 조금 전에 예스를 해놓았으니.(웃음) 목사님께서 아주 지혜롭게 저를 몰아세우셨지요. 그러시면서 후원회를 조직해 나머지 생활비를 스스로 조달해보라고 하시는데 제가 미국에서는 공부해서 박사학위받은 것 밖에 없는데 어딜 가서 후원회를 조직합니까. 그때 아마 1250불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 얘기를 집에 와서 아내에게 했더니 바로 “내가 후원회장 하지 뭐” 그러면서 나가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사역의 규모도 커지고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저희도 몇 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제와 교회의 상황에 따라, 지금과 같은 팬데믹을 맞으면서 좀 힘든 시간을 만나기도 했죠. 사실 모든 선교사역이 다들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쓰시는 일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채우시는 거고, 아무리 훌륭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용도 폐기가 되 고 마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내 뜻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이 시대에 나와 이 단체를 어떻게 써주시나, 여기에 민감하게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기아대책기구에 후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월드비전이나 컴패션이 수혜자를 선택할 수 있는 것에 반해 저희는 한 교회가 한 커뮤니티를 맡아서 후원하는 것을 권합니다. 교회가 후원하는 커뮤니티에 단기 선교도 가고, 후원하는 아동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그 마을이 어떻게 신앙과 복음으로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열매를 맺어가는지를 보면서 교회와 커뮤니티가 같이 믿음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합니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과 복음을 공급해야 하는 사람을 연결하는 중매장이 같은 역할을 저희가 하고 있는 것이죠. 만약 교회가 어떤 커뮤니티를 돕고자 한다면 저희 파송 선교사가 있는 지역들을 제안하고, 제안한 지역들에서 선택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청년시절로 돌아가서, 신학교는 어떻게 가시게 되었어요?

어머니 쪽으로는 침례교 선교사의 빨래를 해주다가 복음을 듣게 된 집이구요. 아버지는 선교사가 세운 이북의 재령장로교회 출신이세요. 황해 노회에서는 교인들이 최초로 돌로 지은 첫번째 교회랍니다. 부모님께서는 첫 아들인 저를 하나님께 바치셔서 자연스럽게 신앙적인 환경에서 성장을 했습니다.

 

고2때 친구 둘과 함께 과외공부를 하러 가는데 뒤에서 오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고로 심하게 다쳐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을 보았어요. 같이 친구들과 리어카를 빌려서 병원으로 갔다가 퇴짜를 맞고 다시 다른 병원으로 옮겨 결국 그분이 살아 나셨어요. 제가 그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것은 누군가가 신음할 때 거기에 내가 응답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는 거다. 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죽어가는 영혼을 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죠. 그렇게 해서 담임목사님이 추천하신 감리교신학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국제기아대책기구도 코로나 19 의 영향을 받으셨지요?


그럼요. 3월에 락다운되고 6월말이 되니까 국제본부에서 두 가지 지침이 내려왔어요. 하나는 집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필드 선교사는 필드에 그대로 있으라는 겁니다. 선교 단체의 모든 선교사들이 대부분 철수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우리도 철수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 Food for the Hungry는 이런 때에 더 어려워진 사람들을 섬기기위해 만들어진 단체이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필드에 있어라.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간 선교사들은 빨리 필드로 돌아가라.”는 지침이었어요. 그래서 안식년으로 들어와 있던 선교사들도 모두 돌아가고 급하게 다 필드로 돌아갔어요.


그 때는 우리도 열심히 지원을 해줘야 하는 때여서 모두 어려운 상황이 되었죠.
상반기 결산을 해보니 우리 펀드의 3분의 1이 사라졌더라구요. 후원자의 대부분이 올드 타이머들이시라 송금하는 것도 모르시고 오직 첵크로 부쳐주시던 분들이었거든요.


7월 첫 주가 되었는데 기도가 저절로 나오더라구요. 아,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한 일서 4장의 말씀을 주셨어요.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쫒나니…' 우리가 코비드를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우리 속에 없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하는 마음으로 방역품을 챙겨서 자동차로 대륙횡단을 시작했어요.
가가호호, LA에서 뉴욕으로, 다시 플로리다로 보스톤, 샌디에고, 피닉스, 시에틀.. 이런 식으로 작년 7월부터 올 9월까지 16번의 대륙횡단을 했습니다.

이러한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질적인 사역,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나님은 원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죠. 미리 연락을 하고 간 것도 아닌데 마음을 모아서 헌금을 준비하신 분들도 만났구요. 그러면서 어려운 때이니 기아 대책의 사역을 더 원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LA에 사시는 90이 가까운 권사님 부부는 웰페어와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모아 1만불을 헌금하셨는데 받고 돌아 나오면서 정말 울컥했습니다. TV를 보는데 아프리카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시며… 코로나 끝나면 우물 판 곳에 같이 가시자고 했어요.
하나님이 그런 분들의 마음을 사용하셔서 주님을 따라가고, 주님께 순종하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비전이 그 권사님의 비전이 된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그런 분들을 팬데믹 기간에 더 많이 만났어요. 어려울 때 교회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개인들이 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주의 일은 계속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하나님의 비전과 목적에 포커스를 두고 그 비전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면, 그것만 흐트러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계속 일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면을 통해서 한인교회들에 한 말씀 해주세요.

 

한인교회는 이민자들을 위해서 세워진 교회잖아요? 복음이 필요할 때 응답하는 교회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이민자가 줄어서 교회의 성도가 줄어든다고 얘기해요. 하지만 제가 여러 곳을 다니다보니 부흥하는 교회가 꽤 있어요.
사실은 이민의 내용이 바뀐 것입니다. 지금의 이민자들은 40-50년 전의 이민자들과 다른 양상입니다.

예전의 이민자들은 가장 어려운 업종에 종사하고 살았다면 지금의 이민자들은 90프로가 전문직에다, 영어도 다 잘하는 사람들이예요. 한 마디로 교회가 필요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있는 것을 교회는 모르는 겁니다.
H마트 같은 그로서리는 어머어마하게 늘어나고 있어요. 요즘 오는 이민자들은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도 많아요. 단지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작년의 인구센서스를 봐도 한인 이민자들은 오히려 늘었어요. 저는 H마트 만큼만이라도 연구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교회만 모릅니다. 그들도 여전히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거든요.
신앙적으로 그들에게 응답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국제기아대책 미주한인본부

Tel. 847-296-4555, Cel. 703-473-4696 E-mail. shchung@fh.org (한글) www.kafhi.org (영어) www.fh.org

 

대담 이윤태 발행인·정리 한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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