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발라 (Kabbalah)

카르포크라테스파 (Carpocratians)
카르포크라테스파(Carpocratians: fl. AD 2세기)는 자유분방주의 영지주의 분파로 그들은 '히브리 복음서'(Gospel according to the Hebrews)만을 따랐다.

보르보로스파 (Borborites)
보르보로스파(Borborites)는 자유분방주의 영지주의파로서 니골라파(Nicolaitans)의 후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울파 (Paulicians)
바울파(Paulicans, Paulicianism)는 양자론(Adoptionism)을 주장한 분파들 중의 하나로 중세 시대 문헌에 따르면 영지주의 기독교인이며 반 마니교적 기독교인이라고 비난 받았다.
바울파는 AD 650년-872년 동안 아르메니아와 비잔틴 제국의 동부 테마들에서 번성하였다. 중세 비잔틴 문헌들에 따르면 바울파라는 이름은 AD 260년-268년 동안 소아시아 안디옥 총대주교였던 사모사타의 바울(Paul of Samosata)에서 유래하였다.

카타리파 (Cathars)
카타리파(Cathars, Cathari)는 프랑스 남부 알비와 툴루즈를 중심으로 생겨난 이단이다. 이들의 교리는 이원론과 영지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1세기에 주로 랑그도크 지역에 전파되었으며 12세기에서 13세기까지 교세를 확장하였다.
카타리파의 교리는 아르메니아의 바울파와 보고밀파의 영향을 받았다. 카타리파는 알비온파와 합병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또한 이들은 마니교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카타리파가 고대 영지주의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인가 하는 것은 현재 논쟁의 대상이다. 영지주의 우주론의 기본 컨셉트들이 카타르파에서 발견되고는 있지만, 고대 영지주의와는 달리 이들은 그노시스 즉 지식을 구원을 초래케 하는 힘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카발라 (Kabbalah)
영지주의의 사상은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Kabbalah)에서 유대교적으로 변용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카발리스트들(Kabbalists)은 영지주의의 여러 핵심 사상들을 수용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초기 유대교 문헌들을 재해석했다.
카발리스트들은 프랑스 남동부의 지중해 해안 프로방스(Provence)에서 기원했는데 당시 프로방스는 영지주의파인 카타리파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때문에 영지주의파인 카타리파가 유대인들에게 영지주의 사상을 전파하여 믿게 하였고 그 결과 카발라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믿어지고 있다. 또한 카발라의 출현에 영향을 준 다른 하나의 사상은 이슬람교의 이스마일파(Ismailis)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들과는 달리 카발라 추종자들은 카발라의 기원이 에덴동산 때 부터 있다고 주장한다.


카발라(Kabbalah)는 이교도의 가르침인 영지주의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영지주의와 같거나 유사한 개념들을 토라(Torah) 의 언어로 표현하고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의 다양한 종교들로부터 많은 수의 추종자들을 끌어들여 놀랍도록 영지주의자들의 신앙과 유사한 신비주의적인 유대교 버전으로 발전시켰다.
카발라와 영지주의는 여러 주제들에 있어 그 입장이 서로 일치한다. 예를 들면 영지주의의 신관(神觀)이나 창조론에 있어 일치한다. 그러나 카발라는 물질 세상과 히브리 성경이 하위 신(神) 또는 악한 신의 창조물이라는 나스틱파만의 두드러진 믿음은 수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카발라를 영지주의의 한 형태라고 보기 보다는 카발라와 영지주의 둘 다가 신플라톤주의와 신(新) 피타고라스주의와 동양의 신비주의 전통에 속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신비주의 전통에는 이슬람교 신비주의인 수피즘(Sufism)도 속한다.

결론적으로 이 영지주의야 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단들의 원형인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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