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온파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 가운데는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완전히 멸망된 후에도 유대교적 관습을 유지하려는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나사렛파(Nazarenes)라는 이름으로 4세기까지 시리아 지방에 존속했다.
나사렛파는 예수의 신성과 메시야 직분을 인정하면서도 모세의 의식적 율법을 엄격히 지키려 했다. 동족의 불신앙을 애도하면서 미래에 이스라엘이 민족적인 회심과 함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지상 천년왕국이 올 것을 기대했다.

나사렛파는 이단이라고 하기보다는 유대교적 특성을 강하게 지닌 기독교 분파로 볼 수 있다. 나사렛파와 유사하면서도 이단적인 집단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에비온파였다. 에비온파에 대해서는 교부들의 설명도 구구하고 자료도 미약하다. 에비온파의 창시자는 '에비온'(Ebion)이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가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에비온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페트라 지방으로 피신하면서 2세기 초에 많은 유대인들을 에비온파로 끌어갔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가난한 분이었고, 사도들도 가난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자기들도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추종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되었다고 했다. 산상수훈의 8복 가운데 “심령이 가난한 자”란 바로 자기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했다. 주로 요단강 동쪽 지방에 많이 퍼져 있었고 구브로 섬이나 심지어는 로마에도 존재했다. 4세기경까지 존속 하다가 사라졌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중요한 주제 (복음과 동시에 어디까지 율법을 지켜야 하는 가에 대한 주제)
역시 에비온파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살펴 볼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이 사도 베드로를 외식한다고 심하게 책망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에비온파적 영향력을 또한 간접적으로 살펴 볼 수가 있다.

에비온파 역시 마르시온파 처럼 가현설을 주장하지만 마르시온파의 교리와 정반대의 교리를 주장했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에비온파는 부분적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은 아니다란 주장) 육체적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인간 요셉과 마라아 사이의 탄생을 주장) 에비온파는 영지주의나 마르시온파 처럼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최초의 이단이요, 또한 7세기에 발현하는 이슬람에 지대한 자양분을 공급하는 이단인 점에서 그 영향력을 간과하면 안될 것이다.

이들은 신약성경 가운데서 유대적 요소가 강한 마태복음만을 변형해서 사용했고 바울 서신은 모두 거부했다. 특히 바울을 배교자요, 이단자라고 간주하면서 심한 적대감을 보였다. (마르시온파에서는 예수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오직 바울을 받아들임을 기억하라) 종말론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시한부 재림론자들과 흡사하게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강조했고, 재림 후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지상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명상적 에비온파는 주로 엣세네파 사람들이 거주하던 사해 근처에 존재했다. 이들은 그 창시자가 '엘카사이'(Elkasai)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엘카사이파'라고도 불리운다. '엘카사이'란 말은 원래 어떤 책의 제목이었는데, 그 저자를 그 책의 제목으로 이름을 삼아 부르게 된 것이었다. 그 책은 천사의 계시에 의해서 기록된 것으로 믿어졌으며, '엘카사이파'에서는 중요한 경전으로 간주되었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피조물로 보고 신성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천사들이나 다른 피조물을 주관하는 매우 높은 피조물로 보았다. 성령에 대해서는 기묘하게도 여성으로 간주했다. 할례 의식을 세례의식과 함께 구원의 필수 요건으로 간주한다든가 바울을 이단자로 보고 바울서신을 거부하는 점은 율법적 에비온파와 마찬가지이다.

예루살렘을 종교의 중심지로 생각하는 유대 민족주의적 요소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핍박 시에 신앙을 부인하는 것을 정당한 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엘카사이'는 후대에 영향을 끼쳐서 많은 문헌들을 산출하게 되었는데, 그 문헌들은 '가짜 클레멘트 저작들'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졌다. 클레멘트라는 사람이 로마인으로서 베드로나 사도를 만나서 설교도 듣고 또 마술사 시몬과의 대화도 들어서 그 내용들을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데, 사실이 아니고 꾸며낸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짜'라는 형용사를 붙인 것이다.

그 내용은 허황된 것들이 많이 포함되었다. 아담은 '원 인간'(primal man)으로서 전지하고 무오한 존재인데 일곱 번에 걸쳐서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및 예수의 모습으로 성육신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를 믿는 것이나 예수를 믿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했다. 내용면으로는 명백한 이단이지만 그 문학 양식은 우수하고 매력적인 것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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