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주 선교사는 '미오새의 꿈을 꾸다 추락한 평범한 그오새'로 자신을 소개한다. 1994년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교회를 개척하고, 이듬해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 무릎 위를 절단해야 했던, 죽음 직전의 고난을 통해 체험한 특별한 은혜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주님의 침례교회를 실리콘밸리에 개척하고 1년 반쯤 지나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자동차 뒤 트렁크에서 물건을 꺼내는 저를 달려오던 차가 받았고, 저는 붕 떠올라 떨어졌다고 합니다. 메디컬센터에서 깨보니 제 왼쪽 다리의 무릎 아래가 절단됐더군요.”
“의사로부터 '남편의 다리를 자르지 않으면 패혈증으로 생명이 위험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자르지 않고도 회복시켜주시기를 기도했는데, 강권적인 은혜로 기쁨과 감사가 밀려왔어요. 그리고 평안 가운데 보호자로서 수술 동의서에 사인할 수 있었지요.
남편이 4시 반쯤 깼는데, 오른발은 움직여지는데 왼발이 안 움직여진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은혜로 응답을 받았지만, 막상 사고를 당한 남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먹먹했어요. 제가 망설이니까 남편은 산소호흡기를 낀 채로 '괜찮아.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셨어'라고 말했고, 그제서야 제가 수술과정을 얘기할 수 있었어요. 그랬더니 뭐라고 대답한 줄 아세요?”
'이제 구두 한 짝만 있어도 되겠네'
“제가 '이제 구두 한 짝만 있어도 되겠네'라고 말했어요.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찬물을 한 바가지 쓴 것 같은 시원한 은혜를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풍랑이는 바다 속에서도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과 같지 않다'는 샬롬의 평강이었죠. 평안과 감사를 주체할 수 없었고, 다리가 절단된 상황에서도 녹음기에 대고 설교를 했어요. 3개월 반을 누워 있었고, 자동차는 폐차됐고, 저를 차로 친 사람은 가난한 무보험자라서 보상도 하나도 받지 못했어요. 당시 큰 아이가 3살, 둘째가 1살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이 감사했습니다.”
'환경으로부터 오는 평안이 아니라 환경이 어떻든지에 대한 평안이 샬롬'이라고 간증하며 이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 힘이 절대 아니었어요. 이기게 하시는데, 내가 이겨야지..가 아니라 구름 위를 걷는 평안한 마음이 온 몸을 감쌌지요. 하나님은 감당할 능력을 주시던지 피할 길을 주십니다. 저희는 고난 가운데 성경에 기록된 계시를 체험하며, 목회가 더 파워풀해졌지요. 교회도 잘 성장했고, 2007년에 야후, 구글, 애플사로부터 10분 거리 실리콘밸리 중심가에 헌당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소외된 미전도 종족을 위해 남은 생애를 드리겠다는 소원을 갖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찬타임스에 연재된 집시촌 선교사인 최영 목사님의 글을 보면서 계속 도전을 받았어요. 여러 신문을 보고, 여러 간증을 접했는데, 이상하게 집시 선교를 하시는 분이 10명도 안된다는 말씀이 와닿아 더 기도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2008년 북가주세계선교대회에 참석했는데, 드디어 갈 때가 되었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사실 한편으로는 '이제는 편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보상 심리도 스물스물 피어오르더군요. 그런데 선교대회 마치고나서 아내도 동일한 마음을 받았다고 했어요. 어느 종족을 섬길 것인가 기도하는 가운데 최영 선교사님께 연락드리고, 2008년 말 15년간의 담임 목사직을 사임하고 GMP선교회(대표 이준호 목사) 소속 선교사로 파송되어 싱가폴 ACTI 선교사훈련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헝가리 로마니(집시)족을 섬기게 됐습니다.”
ACTI에서 끊임 없이 강조한 것은 “선교는 낭만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정말 선교는 현실이었다. 5백년 이상 유럽에서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영적으로도 소외되어 춥고 어두운 바깥세상에 버려진 집시들을 대하며 긍휼함과 책임감이 밀려왔다.
“원래 아내는 지저분한 것을 힘들어하는데도, 집시촌으로 들어가더군요. 그 곳은 '열악하다'는 표현조차도 호화로운 곳이에요. 헝가리 부다페스트 학교에서 1년간 언어교육을 받았고, 헝가리 동북부 미쉬콜츠(Miskolc) 지역에서 교회 개척을 했어요. 헝가리 침례교 목사님들과 동역하며 다섯 마을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동역자들이 없었으면 사역할 수 없었을 거예요. 동유럽 집시들은 강제로 정착시켰기 때문에 도시나 마을의 변두리에 모여 살아요. 선교학적으로 볼 때 미전도 종족입니다. 이들은 인도로부터 유랑해온 종족이고, 히틀러에 의해 50여만 명이 학살됐지요. 마을마다 성당이 있지만 사람 대우를 못 받는 이들에게는 복음화 비율이 2%밖에 되지 않아요. 이들이 교회로 들어가면 헝가리 사람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도 민족별, 종족별로 선교하라고 하셨잖아요. 많은 분들이 헝가리 집시들을 유럽인으로 생각하고, 유럽교회가 전도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헝가리 사람들은 정부의 생활보조비를 받고 살고, 그러다보니 의존도가 높으며 게으른 집시들을 항상 하대해왔기 때문에 복음 전파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와 같은 한국인은 한 영혼, 한 육체로 다가갈 수 있지요.”
집시촌 도서관 건립, 어떻게 할까

10개 집시촌 교회와 10명의 목회자를 세우는 것이 목표인 이들은 최근 헌당한 교회의 도서관 건립과 방과후학교 운영을 위해 <그오새 미오새>라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한글과 영어로 되어 있는데, 영역본은 큰 아들 박한울씨(에모리대 4학년)가 맡았다.

“예배당 옆에 창고와 축사가 붙어있는데, 도서관으로 개조하고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헌당한 교회가 지역을 위해 유용하게 쓰이겠더라고요. 동화책 판매 대금을 도서관 건립 씨앗 머니로 사용하려고 해요.
각 집시촌마다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면, 도서관을 설립하고 싶어요. 제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니까, 교회 세우는 것은 어려울 것 같지 않아요.
집시들은 예배당에서 초등학생들도 담배를 피웠었고 헌금의 개념도 없지만, 이제는 예배당을 거룩하게 생각하고 심방한 목사에게 음료수도 대접합니다. 복음이 위대하기 때문에 세대를 이어온 일그러진 문화가 변해가는 것을 직접 바라보게 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선교사의 길을 간다는 자체가 천사도 흠모할만한 일이며 감사와 감격이 넘친다”고 샬롬을 고백하는 박 선교사 부부. 이들의 고백대로, 푸른 가을 하늘을 찢으며 날아오르는 미오새의 성공도 위대하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그오새들의 소박한 삶 역시 아름답고 위대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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