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타에서 누가 고물 자동차를 주기에 그것을 수리해서 쓰다가, 그것을 몰고 미시시피 주의 잭슨빌에 들러 유학 중이던 권용근 목사를 만나고, 다음날 출발하여 달라스로 향하여, 거기서 며칠을 묵으면서 황인복, 석보욱, 김택주 목사 부부 등 많은 동문들을 만났다. 여러 곳에서 설교도 하고, 월요일에는 약간 피곤을 느끼면서도 다시 차를 몰아 서쪽으로 향했다. 텍사스 주 아말릴로라는 도시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 나와 내 아내가 다 졸음에 빠지는 바람에 빠른 속도로 길을 벗어나 비탈로 내달았다. 깜짝 놀라 눈을 뜨니 앞에 큰 바위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속도를 줄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니, 차가 다시 고속도로로 올라오면서, 자동차 뒤의 범퍼가 아스팔트 포장에 걸리면서 속도가 죽었다. 그러나 공중에 떴던 차가 쾅하고 도로에 내리 앉았다. 요행히 지나가는 다른 차가 없어서 충돌은 하지 않았는데, 연료통에 충격이 가서 기름이 새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불이 날 뻔 했고, 불이 났더라면 차가 폭발하는 바람에 둘이 즉사할 뻔 했다. 아내는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있던 상태여서, 차 천정까지 떴다가 내리 앉으면서, 허리에 충격을 받았다. 척추 디스크를 앓던 아내는 그 충격으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별 수가 없어서 차를 천천히 몰고 아말릴로까지 가서 여인숙에 들려 이틀간 차 수리도 하고 아내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나서 다시 그곳을 출발했다. 그랜드 캐년을 지나게 됐는데, 아무리 아파도 그 곳을 기웃이라도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그리로 몰고 들어갔다. 캐년 절벽에 다다라 아내더러 기웃거리기라도 하라고 했다.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었지만 억지로, 아마 일초 정도 절벽을 보고는 주저앉았다. 일 초짜리 그랜드 캐년 관광을 한 셈이다. 그리고는 킹맨이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그 곳은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와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이다.
나는 라스베가스에 가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리로 갈 생각으로 차를 그 방향으로 몰았다. 그러나 아말릴로에서 부상을 입은 차가 도중에 머풀러까지 떨어져 나가는 등 도저히 더는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시 킹맨으로 돌아와, 차를 좀 더 수리하고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달라스에서 설교하고 사례금으로 받은 돈 600불이 수리비로 다 나갔다. 마침내 로스앤젤레스에서 내 여동생 정연의 집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처형인 현수신(길성운 지사 부인) 권사 댁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장신동문들이 환영회를 가진다고 하는데, 우리를 데리러 왔던 임형석 목사(영락교회 부목사)가 내 아내의 꼴을 보고는 당장에 척추병원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김광은 장로의 병원이었다. 영락교회에 출석하는 청년 장로였다. 아내가 4일간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그리 큰 차도는 없었다.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마지막 날 치료비를 계산하려고 했더니, 임형석 목사가 자기의 신용카드로 물겠다는 것이었다. 그 병원 김 원장이 나더러 하는 말이, “목사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제가 숭실대학교를 졸업하고 장신대에 입학하여 한 학기를 공부하면서 목사님께 헬라어를 배웠는데, 그 때 제가 98점을 맞았습니다. 제가 사모님 치료비를 받지 않겠습니다.”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약 400 불에 해당하는 치료비를 물지 않고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그랜드캐년을 지나게 됐는데 잠깐이라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다시 미국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88 서울 올림픽 경기를 잘 보았고, 한 학기 동안 신학교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고는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 강형길 교수의 초청으로 다시 미국으로 떠나게 됐다. 미국 VISA가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여행 수속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내는 서울 남대문 근처에 있는 용한 척추 전문 한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기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새문안 교회 당회장 김동익 목사의 부인 황산성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박 목사님, 저를 좀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나는 그 분과 별로 친숙하지 않았고, 교제가 없는 상태였는데, 그런 전화를 받고는 의아한 마음으로, “제가 사모님을 도울 일이 무엇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곽선희 목사 건으로 소망교회 장로들이 나를 걸고 소송을 한다고 합니다. 목사님께서 내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하고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실은 그 전 해에 돌아가신 강신명 목사님의 일주기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계 저명 인사들에게 순서를 맡겼는데, 그 예배에 순서를 맡은 곽선희 목사가 새문안 교회 당회실로 들어설 때, 황산성씨가 곽 목사를 그 자리에서 쫓아버렸다는 것이다. 황변호사는 곽 목사의 숨은 비행을 여러 가지 알고 있고. 그 비행들을 다른 여성 교우들과 함께 폭로하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망교회 당회원 중 법조계에 있는 분들이 황 변호사의 당돌한 행동에 격분하여, 그녀를 걸어 재판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곽목사의 행동을 내가 잘 안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나 더러 증인이 되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면서 황변호사는 자기가 곽 목사의 비행에 대하여 적어도 네 가지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시간적 여유도 없고 해서 사양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 후에 소식을 들으니, 곽 목사의 비행을 들쳐보아야 결국 기독교회의 망신이 아니냐고 하면서, 한경직 목사 등이 나서서 그 사건을 무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계속>

박창환 목사
전 장신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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