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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II. 기억에 남은 나의 생애의 편모(片貌)들

박창환 목사 | 등록일 2018년11월09일 15시29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현재 장신대학교

 

홍익대학교 편입과 졸업

고려신학교에 편입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장로신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모교의 전임강사가 되어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였다. 조선신학교 스트라이크 사건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한성욱(한병혁 목사의 아들. 총신 1회 후기 졸업생)이 제 2 학년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나더러 홍익대학에 편입할 길이 있으니 같이 편입을 하면 어떻겠는가고 권하는 것이었다. 원칙적으로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대학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인데, 여건이 허락지 않아 그런 정로를 밟지 않았기에, 이제라도 대학 학력을 갖추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한성욱과 함께 홍익대학교 문과대학 영문과에 편입을 했다. 홍익대학이 그 때에는 서울 용산구 문배동에 있었다. 야간부 학생으로 몇 번 강의를 들으려고 출석을 했다. 그러나 그 어수선한 시대에 강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고, 피난을 가고 하면서, 그야말로 허울만 좋은 대학 졸업장을 부산에서 받게 되었다. 결국 가짜 졸업장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장신대 전임강사 시절

내가 모교에서 전임강사가 되어 가르치기 시작한 지 약 일 년이 지난 가을 학기였다. 왜정 말에 나에게 결혼을 청했던 김인실이 자기 언니 김진실과 함께 38선을 넘어, 장로회신학교에 입학을 하겠다고 하며 학교에 나타났다. 김진실은 평양신학교에 다니다가 왔고, 인실은 성화신학교에 다니다 왔다. 그들을 신학교에서 안 받거나, 못 받을 이유가 없었다. 김인실은 내가 가르치는 헬라어 클라스에 출석하였다. 나는 일부러 그녀에 대하여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 전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를 학생으로 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속으로 나에 대한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나에게 청혼을 했었고, 내가 군대로 입대하는 바람에 “천당에서나 만나자”는 반신(返信)을 그녀에게 주었지만, 이제 내가 살아서 돌아온 이상, 자기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내가 남하한 후 그녀는 나의 고모님이 권사로 계시는 동평양교회에서 성가대 반주를 하며, 나와의 관계를 말하고, 나에 대한 그녀의 솔직한 심정을 나타내 보였다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나는 30살이 되기까지는 누구 하고도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있는 때인지라, 인실이에게도 중립적 태도를 가지고 지냈던 것이다. 그녀는 계속 나에 대한 관심을 가졌을 것이지만 말이다.

 

겨울 방학이 돌아왔다. 그런데 헬라어 교과서를 끝까지 떼지 못하였기 때문에, 학생들이 열심을 보이며, 남은 부분을 과외로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숙소인 박 박사님 사택에서 헬라어 교과서를 끝까지 가르쳤다. 그 때에 김인실, 주선애, 이양화, 강인수 등등이 같이 공부했다. 교과서를 다 떼고, 이제는 원어 성경을 읽어야 하는 단계에 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숙제를 내 주며 읽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 때에는 헬라어 성경을 시장에서나 책방에서 살 수 없었다. 다행히 나에게 헬라어 신약성경이 다섯 권이나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빌려주면서, 일부러 인실에게는 주지 않았다. 짓궂은 장난이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인실은 야속함을 느꼈을 것이다.

<계속>

 


박창환 목사(전 장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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