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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 속에 걸어온 나의 삶

II. 기억에 남은 나의 생애의 편모(片貌)들

박창환목사 | 등록일 2018년11월23일 20시41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아버지의 유일한 유물 그리고 가훈(家訓)

 

그 맨 끝 단어 “가훈을”이라는 말을 읽으면서, 그가 만들었던 가훈을 회상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하한 삼촌들에게 우리 집안 가훈을 물었으나, 그들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흡하지만 우리 집 가훈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주었다. 내가 먹으로 화선지에 쓴 가훈이 표구되어 나의 손녀 집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성삼위 하나님만 믿고 섬기자.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르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성하자.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람에게 기쁨을 주자

 


앞줄 왼쪽이 박창환 목사의 조부모인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박태로 목사다.


족보도 없는 집안

나는 내 할아버지 이상의 계보를 알지 못하고 있다. 찾아본 일도 없지만 거기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 족속의 계보를 존중하고 따졌던 모양인데, 히브리서 저자는 족보도 없는 멜기세덱을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에 견주고 있다. 족보가 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시고 그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은총이 더 귀한 것이다. 우리 집안의 족보가 묘연하고 할아버지 이상을 알 길이 없을 정도로 미미한 집안이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그의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 사용하시니 감격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나는 소설적으로 나의 할아버지의 과거를 상상해 본다. 큰 할아버지 박태로를 먼저 택하신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그의 동생들 태화(泰和), 태성(泰善)을 신앙에로 인도하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아들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삼 형제가 뿔뿔이 흩어져서 각각 자기들의 앞길을 개척해야 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제 할아버지는 소꼬지 송(宋)씨 집에 데릴사위가 되는 행운을 얻었다. 어떻게 해서? 나는 추측해 본다. 그 송(宋)씨 집에 일꾼이 필요하였고, 어떤 사람의 소개로 할아버지는 그 집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신앙인으로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면서, 부지런히 일을 하는 청년 박태화는 그 집안과 동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 댁에 딸들이 있었다. 시집을 가야할 연령의 규수 태신(泰信)이라는 처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딸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그녀의 목 전면에 커다란 혹이 있는 것이었다. 그 혹을 빼고는 아주 어여쁜 처녀였다. 그 송 씨 집안에서는 그 딸을 출가시키는 것이 큰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딸과 박태화 청년과의 관계가 발전되었을 것으로 집작된다. 송 씨 집안에서는 착실한 청년 박태화가 마음에 들었고, 그를 사위로 삼을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을 어찌 하지 않았겠는가. 박태화 청년은 오래 동안 한 집에서 일을 하면서 날마다 보는 처녀 태신에 대한 연정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랑의 눈으로 볼 때 태신의 혹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고 본다. 아니면 그 집 사위가 되어달라는 어른들의 청을 감수하며, 내가 아니면 누가 그 혹 달린 처녀를 데려갈 것인가 하는 희생정신으로 그 제안을 승낙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는 그런 경로를 거쳐서 박태화 청년이 송 씨 집의 데릴사위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 복덩어리 사위를 맞은 그 집은 축복에 축복을 받으며 흥왕한 것이다. 후에 나의 삼촌 박경대 장로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소꼬지 동네 사람들이 돼지를 기르는데 대개 한 배에 다섯 혹은 여섯 마리 새끼를 낳는데, 박태화 장로 댁의 돼지는 한 배에 열 마리 이상을 낳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박 장로의 돼지 씨를 받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유별나게 나의 할아버지에게 임했다는 증거가 아닌가 말이다.


할아버지의 신기한 별세

자수성가하신 할아버지는 당포(唐浦)교회와 그 근방은 물론 황해 노회 단위에서까지 이름을 날리는 장로로서 활동하셨다. 그 시골 당포교회에서 황동(黃東)노회를 개최하는 광경을 나는 보았다. 즉 당포교회는 노회가 모일 정도로 실력 있는 교회였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신 할아버지가 69세 때 8.15 해방을 맞았다. 희망 중에 해방을 맞았지만, 38선으로 북한과 남한이 갈라지고, 북쪽에 공상정권이 들어서면서 어두운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소위 지주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코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정당한 노력으로 부자가 된 할아버지이지만, 토지를 분배한다느니, 농지 개혁을 한다느니 하는 공산주의적 강제 조치의 소문이 들려오고 있으니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할아버지가 70세가 되는 해 봄에 그를 하늘로 데려가실 계획을 가지시고, 그에게 세상을 떠날 날짜를 알려주셨다. 그 더러운 꼴을 보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그를 하늘로 데려가시려는 것이었다.  <계속>

 


박창환목사

전 장신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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